16. 모두가 원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 안정

희소한 안정의 자리

by NOAH KIM
다들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표지.png

[먼저 보기 : 15. 실패보다 더 사람을 흔드는 것은 애매한 정체다.]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16


[왜 어떤 사람에게 안정은 일상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 안정은 늘 다음 단계의 일이 되는가]


안정은

대단한 욕망이 아닙니다.


취준생이 원하는 것도

대개는 엄청난 특권이 아니라

일단 버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직장인이 원하는 것도

늘 화려한 성공은 아닙니다.


내일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감각,

지금의 삶이 당장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감각을 더 자주 원합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회사를 찾는 이유가

더 멋져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지금보다 덜 불안하고,

지금보다 덜 흔들리고,

조금 더 오래 견딜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안정은

거의 모두가 원합니다.


그런데 거의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구는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고,

누구는 오래 경계 위를 맴돌고,

누구는 계속 다음 안정만 바라보며 움직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안정이 단지 개인의 성실함으로만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한 번의 차이가 이후의 차이를 더 크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 배분될 수 있다는 점부터 봐야 합니다.


사회학자 Robert K. Merton의

매튜 효과(Matthew Effect)

이미 더 많은 자원과 인정, 기회를 가진 사람이

이후에도 더 쉽게 자원과 인정, 기회를 얻게 되는 경향을 설명합니다.


처음의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벌어지고,

한 번 유리한 위치에 오른 사람은

그 유리함을 계속 축적하기 쉬워진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과학자의 인정과 보상 분배를 설명하는 데 쓰인 개념이지만,

지금의 취업과 직장, 이직의 장면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취준생에게는

한 번 좋은 인턴 경험이나 첫 직장을 얻은 사람이

그다음 기회도 더 쉽게 얻게 되는 장면으로 나타납니다.


직장인에게는

한 번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이후에도 더 많은 기회와 더 좋은 역할을 얻기 쉬운 장면으로 나타납니다.


이직 준비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설명하기 좋은 경력,

이미 읽히기 좋은 브랜드,

이미 신뢰를 주는 경로를 가진 사람은

새로운 자리로 옮길 때도 더 쉽게 안정권 안으로 들어갑니다.


즉, 안정은

한 번 얻고 나면 그것을 더 굳히기 쉬운 자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안정이 필요해도

출발이 조금 앞선 사람은 더 빨리 안정을 누리고,

조금 뒤처진 사람은 더 오래 불안정을 감당하게 됩니다.


안정이 노력의 결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누적된 유리함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개인의 축적만이 아니라

일자리와 조직 자체가 나뉘어 있는 구조도 함께 작동합니다.


노동경제학자 Peter B. Doeringer와 Michael J. Piore의

이중노동시장 이론(Dual Labor Market Theory)

노동시장이 하나의 동일한 장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승진과 보호가 가능한 1차 노동시장과

불안정하고 교체 가능성이 높으며 보호가 약한 2차 노동시장으로 나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시장 안에서 경쟁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규칙과 전망을 가진 구역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어떤 사람은 한 번 안으로 들어간 뒤 계속 안정에 가까워지고,

어떤 사람은 계속 비슷한 불안정만 반복하게 되는지 이해가 쉬워집니다.


취준생에게

첫 직장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첫 자리가

단지 하나의 시작점이 아니라

어느 구역으로 들어가게 되는지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직장인에게도

지금 속한 조직과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자리가 단순한 현재가 아니라

앞으로의 이동 가능성과 보호 수준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직 준비자 역시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회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다른 종류의 시장,

다른 종류의 안정성 안으로 옮겨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사람들은 단지

더 좋은 회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 안으로 이동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안정은

개인의 심리 상태가 아니라

어떤 구역 안에 들어가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오면

왜 요즘 사람들이 안정에 더 민감한지도 조금 보입니다.


문제는 지금의 많은 사람이

그 안정 바깥에 오래 머문다는 점입니다.


사회정책학자 Guy Standing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안정된 직업 정체성과 지속적 보호,

예측 가능한 미래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채

계속 유연성과 불확실성을 떠안는 계층적 상태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소득이 적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기반,

자기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기반,

앞으로의 방향을 그려볼 수 있는 기반이 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의 불안정이 단지 일시적인 과도기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생활 조건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취준생은

안정이 아직 오지 않은 상태를 오래 견디고,


직장인은

안정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감각 속에서 버티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지금의 불안정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지만

새로운 자리도 완전히 안전하리라는 확신은 갖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에게 안정은

이미 가진 상태라기보다

계속해서 다시 확보해야 하는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안정이 도달점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잠정적인 체류지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겨우 안으로 들어가도

언제까지 그 안에 머물 수 있을지 모르고,

조금 나아져도

그 상태가 오래 유지될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안정은

왜 이렇게 희소하게 느껴질까요.


모두가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안정이 더 이상 기본값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선별되어 배분되는 자원에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누적된 유리함은

더 많은 안정으로 이어지고,

한 번 바깥에 놓인 사람은

그 바깥을 오래 벗어나기 어려워집니다.


시장은 나뉘어 있고,

기회는 축적되며,

불안정은 일시적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지속적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안정을 바라는 마음을

쉽게 과도한 욕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안정은

사치가 아니라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조건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최소 조건이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늘의 불안을 더 깊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안정이 필요해서 움직입니다.


하지만 구조는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같은 안정성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계속 다음 단계의 안정만 바라보며 움직이고,

누군가는

이미 안정 안에 있으면서도

그 안을 지키기 위해 계속 불안해합니다.


이쯤 되면

조금 불편한 질문이 남습니다.


안정이 이렇게 희소하고,

차이와 불평등이 계속 누적된다면,

우리가 각자의 길을 간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정말 같은 조건에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도 있습니다.


안정을 모두가 원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무엇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비슷한 안정과 비슷한 승인, 비슷한 보호를 향해

같은 마음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열어보려 합니다.


우리는 정말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길을 잃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향하는 목적지가 너무 비슷한데

그 자리는 모두를 받아줄 만큼 넓지 않기 때문에 더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글 보기 : 17. AI를 전제로 평가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18


[참고문헌]


Doeringer, P. B., & Piore, M. J. (1971). Internal labor markets and manpower analysis. D. C. Heath.


Merton, R. K. (1968). The Matthew effect in science. Science, 159(3810), 56–63.


Standing, G. (2011). The precariat: The new dangerous class. Bloomsbury Acade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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