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게 평가되는 주변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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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잘해도, 왜 어떤 사람은 더 자연스럽게 읽히고 더 쉽게 통과하는가?]
사람들은
결국 실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취준생에게도
스펙보다 실력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직장인에게도
결국 남는 것은 실력이라고 말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화려한 포장보다 본질적인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실력은 중요합니다.
오래가는 힘도 대개는
결국 실력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면
조금 불편한 장면도 함께 보입니다.
비슷하게 잘해도
어떤 사람은 더 자연스럽게 읽히고,
어떤 사람은 더 신뢰받고,
어떤 사람은 더 매끄럽게 통과합니다.
같은 내용을 말해도
누구의 말은 더 세련돼 보이고,
누구의 성과는 더 크게 읽히며,
누구의 실수는 성장 가능성으로 해석됩니다.
이럴 때 사람은
쉽게 억울함을 느낍니다.
실력만 보면 비슷한 것 같은데,
왜 결과는 다르게 나올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실력이 언제나 맨몸으로 읽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부터 봐야 합니다.
사회학자 Pierre Bourdieu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은
사람이 가진 지식이나 취향, 말투, 태도, 감각 같은 것이
단순한 개인적 특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 가치 있게 읽히는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같은 실력도 다르게 읽히는지 이해가 쉬워집니다.
취준생의 자기소개서에서
문장력은 단지 글쓰기 실력만이 아닙니다.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 아는 감각,
어떤 어휘와 구조가 읽히는지 아는 감각,
자기 경험을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정리해야 하는지 아는 감각이 함께 들어갑니다.
직장인의 성과도 비슷합니다.
실제 성과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성과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
어떤 태도로 설명하는지가
함께 읽힙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력의 내용 못지않게
그 경력을 어떻게 맥락화하고,
어떤 흐름으로 정리하며,
얼마나 익숙한 문법 안에서 설득력 있게 보이게 하는지가 결과를 바꾸기도 합니다.
즉, 실력은 중요하지만
실력이 읽히는 방식은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역량을
조직과 시장이 익숙하게 읽는 형식으로 보여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도
그걸 한 번 더 번역해야 겨우 읽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단지
더 똑똑해서만도,
더 성실해서만도 아닐 수 있습니다.
무엇이 자연스럽고,
무엇이 세련돼 보이고,
무엇이 “원래 이런 사람 같다”는 인상을 주는지에 대한
문화적 감각의 차이도 함께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 더 즉각적인 심리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Edward L. Thorndike의
후광효과(Halo Effect)는
어떤 한 가지 긍정적 인상이나 두드러진 특성이
그 사람의 다른 면까지 더 좋게 평가하게 만드는 경향을 설명합니다.
이 효과는
왜 어떤 사람은 더 쉽게
“일도 잘할 것 같고, 판단도 좋을 것 같고, 믿을 만할 것 같은 사람”으로 읽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첫인상이 정돈되어 있고,
말이 차분하고,
이력이 매끄럽게 보이면
사람은 그 사람의 다른 역량까지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조금 어수선해 보이거나,
말이 덜 익숙하게 들리거나,
자기를 설명하는 방식이 매끄럽지 않으면
실제 역량과 별개로
전체 인상이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더 쉽게 통과하는 이유를
모두 실력 차이로만 설명하면
중요한 층을 놓치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실력 그 자체와
실력이 만들어내는 인상,
그리고 그 인상이 다시
실력 전체의 평가에 영향을 주는 과정이
겹쳐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남습니다.
도대체 왜 어떤 사람은
그런 문화적 감각과 인상, 맥락 판단을
더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걸까요?
여기서 봐야 하는 것이
“설명 가능한 실력”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능력입니다.
철학자이자 과학사상가 Michael Polanyi의
암묵지(Tacit Knowledge)는
사람이 알고 있고 수행할 수 있지만
완전히 말로 다 설명하거나 규칙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종류의 앎을 설명합니다.
이 개념은
왜 어떤 사람은
무엇을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분위기를 읽어야 하는지,
어떤 타이밍에 어떤 표현을 골라야 하는지를
훨씬 더 자연스럽게 해내는지 설명해 줍니다.
그건 단순한 정보량의 차이만이 아닙니다.
반복된 경험,
몸에 밴 감각,
오랫동안 축적된 눈치와 판단,
설명하기 어려운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앎이 함께 작동합니다.
취준생에게는
면접장에서 어떤 밀도로 답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직장인에게는
보고의 타이밍,
회의에서 끼어드는 방식,
문제를 언제 드러내고 언제 유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자기 경력을 어디서 끊고 어디를 강조할지,
어떤 설명은 덜고 어떤 흐름은 살릴지를 아는 감각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실력과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력이 실제 세계에서 작동하도록 해주는
보이지 않는 층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이 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이력과 말, 결과만 보고
“저 사람은 원래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문화적으로 읽히는 방식,
긍정적 인상을 확장시키는 심리적 효과,
설명하기 어려운 암묵적 판단과 감각이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말은
실력을 무시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실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실력이 실제로 어떻게 읽히고,
어떤 층을 통과해야 의미가 되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현실의 경쟁은
지식과 역량의 차이만으로 벌어지지 않습니다.
무엇이 가치 있어 보이는가,
누가 더 신뢰할 만하게 보이는가,
누가 더 자연스럽게 “이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는가가
함께 작동합니다.
그러니
실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냉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왜 어떤 사람은 자꾸 한 번 더 번역해야 하고,
왜 어떤 사람은 같은 역량으로도 더 쉽게 읽히는지,
그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왜 늘 더 쉽게 통과하는 걸까요.
단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면,
그 사람들은 무엇을 더 자연스럽게 갖고 있거나,
어떤 구조 안에서 더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어떤 사람은 왜 늘 더 쉽게 통과하는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차이는
더 많이 알고 더 열심히 해서만이 아니라,
무엇이 읽히고 무엇이 허용되는 세계인지에
조금 더 먼저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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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dieu, P. (1984).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R. Nice, Trans.). Harvard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79)
Polanyi, M. (1966). The tacit dimension. Doubleday.
Thorndike, E. L. (1920). A constant error in psychological rating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4(1), 2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