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종국과 결과, 다른 종국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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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필요하지만, 모든 길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곳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주 말합니다.
길은 달라도 괜찮다.
결국은 도달할 수 있다.
남들처럼 가지 않아도 된다.
이 말은
지친 사람에게 꽤 큰 위로가 됩니다.
취준생에게도 그렇고,
직장인에게도 그렇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그렇습니다.
지금 속도가 조금 느려도,
지금 경로가 조금 달라도,
결국 자기 방식대로 가면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은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생각해보면
이 말은 동시에 조금 위험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너무 쉽게 사용되면
모든 길이 정말 비슷한 조건으로 열려 있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다른 길로도 비슷한 곳에 도달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비슷하게 출발했는데도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합니다.
그러니
“각자의 길로 가도 결국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제나 충분한 말도 아닙니다.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어떤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를 더 굳혀간다는 점부터 봐야 합니다.
경제사학자 Paul A. David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은
어떤 선택이나 배열이
처음에는 우연하거나 작은 차이로 시작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누적 효과를 만들고
나중에는 다른 길로 바꾸기 어려운 흐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각자의 길”이라는 말이 늘 똑같이 작동하지 않는지 이해가 됩니다.
사람은 분명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방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길은
조금만 먼저 시작해도
그다음 선택을 더 쉽게 만들고,
어떤 길은
한 번 놓치면
이후에 다시 합류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취준생에게는
첫 직장, 첫 업종, 첫 포지션이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그다음 기회를 부르는 경로가 되기도 합니다.
직장인에게는
지금 맡은 역할과 지금 쌓는 경험이
다음 이동의 가능성을 더 열어주기도 하고
반대로 특정한 방향에 오래 묶어두기도 합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어떤 선택은 이후를 더 쉽게 만들고,
어떤 선택은 당장의 탈출은 되지만
그다음의 방향을 더 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즉, 길은 언제나 완전히 자유롭게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한 번 걸은 길은
다음 길의 모양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길”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그 길들이 언제나 같은 무게를 갖는다고 믿어버리면
중요한 현실을 놓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대로 꼭 함께 봐야 할 것도 있습니다.
경로의존성만 강조하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발달심리학자 Dante Cicchetti와 Fred A. Rogosch의
다종국성·등종국성(multifinality and equifinality)은
하나의 출발이 여러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서로 다른 출발이 비슷한 결과로 수렴할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삶의 경로는 단선적이지 않고,
하나의 조건이 단 하나의 결말만을 강제하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개념은
왜 이 시리즈가 계속
“다들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이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는지도 잘 설명해줍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다른 준비를 했는데도
비슷한 조직, 비슷한 삶의 형태, 비슷한 불안에 도착합니다.
반대로
비슷한 출발선에 섰던 사람도
전혀 다른 경험과 선택을 거치며
서로 다른 결과로 흩어지기도 합니다.
취준생의 삶도 그렇습니다.
같은 학교, 비슷한 스펙으로 시작했어도
누구는 안정적인 조직으로 가고,
누구는 오래 경계에 머뭅니다.
직장인도 비슷합니다.
같은 부서, 비슷한 역할에서 시작했어도
누구는 점점 더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가고,
누구는 점점 더 소모되는 방향으로 갑니다.
이직 준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불만에서 출발했어도
누구는 더 나은 자리로 이동하고,
누구는 비슷한 문제를 다른 회사에서 다시 만납니다.
즉, 현실은
“모든 길은 결국 같다”도 아니고
“처음부터 다 정해져 있다”도 아닙니다.
다르게 가도 비슷한 곳에 닿을 수 있고,
비슷하게 시작해도 전혀 다른 곳으로 흩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길에 대한 이야기는
희망과 냉정함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가능성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언제나 같은 조건으로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쯤 되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 달라 보입니다.
우리는 종종
희망을 막연한 낙관처럼 생각합니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기대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정말 힘이 되려면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심리학자 C. R. Snyder의
희망이론(Hope Theory)은
희망을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원하는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경로(pathways)를 떠올리고,
그 길을 실제로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의지(agency)를 함께 지닌 상태로 설명합니다.
Snyder는 희망을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목표지향적 사고의 한 형태로 보았습니다.
이 이론은
“각자의 길로 가도 결국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꿔줍니다.
희망은
아무 길로나 가도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가려는 곳이 무엇인지,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경로가 있는지,
중간에 막히면 다른 길을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길을 계속 밀고 나갈 힘이 남아 있는지를 함께 묻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희망은
현실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어떤 경로가 아직 가능한지 붙드는 힘에 더 가깝습니다.
취준생에게 필요한 것도
“다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위로보다
지금 내 조건에서 가능한 길이 무엇인지 다시 설계하는 힘일 수 있습니다.
직장인에게도
“버티면 언젠가 알아줄 거야”보다
지금 이 조직 안에서 어떤 경로가 열려 있고
어떤 길은 사실상 닫혀 있는지를 읽는 힘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직 준비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떠나고 싶은지,
어떤 조건이 반복해서 나를 소모시키는지,
내가 실제로 원하는 종착지가 무엇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즉, “각자의 길로 가도 결국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
정말 힘이 되려면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경로를 읽고 다시 설계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현실의 문턱과 경로의 굳어짐을 무시한 희망은
잠깐 마음을 달랠 수는 있어도
오래 가는 힘이 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느껴버리면
사람은 너무 빨리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둘 사이를 함께 보는 일입니다.
길은 분명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로도 비슷한 곳에 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들은
서로 같은 폭으로 열려 있지 않을 수 있고,
경로에 따라 더 굳어질 수도 있고,
중간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흩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각자의 길로 가도 결국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은
어디까지 맞을까라는 질문은
희망을 부정하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희망을 현실 위에 다시 올려놓기 위한 질문에 가깝습니다.
길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떤 문턱을 통과해야 하는지,
어떤 경로는 왜 더 굳어지는지까지 함께 봐야
그 말은 진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조금 더 불편한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가 애써 도달하려는 그 종착지는
정말 내 것일까요?
내가 원한다고 믿는 그 자리,
그 성공,
그 안정,
그 커리어의 완성은
정말 내 욕망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사회와 조직이 오래전부터
좋은 끝이라고 불러온 방향을
내 욕망처럼 배워온 것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우리가 향하는 종착지는 정말 내 것일까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길로 갈지를 고르는 일만이 아니라,
내가 가려고 하는 그 끝이
정말 내가 원하는 끝인지 다시 묻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28
Cicchetti, D., & Rogosch, F. A. (1996). Equifinality and multifinality in developmental psychopathology. Development and Psychopathology, 8(4), 597–600.
David, P. A. (1985). Clio and the economics of QWERTY.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75(2), 332–337.
Snyder, C. R. (2002). Hope theory: Rainbows in the mind. Psychological Inquiry, 13(4), 249–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