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우리가 향하는 종착지는 정말 내 것일까?

내 목표는 내 것인가?

by NOAH KIM
다들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표지.png

28. 개인의 성공도 왜 조직의 언어를 닮아갈까?

[먼저 보기 : 26. 각자의 길로 가도 결국 도달할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27


[내가 원한다고 믿는 목표는 어떻게 사회와 조직의 언어를 닮아가는가]


사람은 대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향해 간다고 믿습니다.


취준생은

자기가 원하는 회사를 말하고,


직장인은

자기가 원하는 커리어를 말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다음 삶을 말합니다.


그 믿음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고,

그래야 버틸 수 있고,

그래야 자기 삶을 남의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금 불편한 질문이 생깁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정말 내 것일까?


내가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

안정이라고 부르는 것,

좋은 회사와 좋은 커리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내 안에서만 만들어진 기준일까?


아니면

사회와 조직이 오랫동안

좋은 끝이라고 말해온 방향을

내 욕망처럼 배워온 것일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사는 현실이

처음부터 자연스럽고 자명한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굳어질 수 있다는 점부터 봐야 합니다.


사회학자 Peter L. Berger와 Thomas Luckmann의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

현실이 단지 거기 객관적으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제도화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현실로 굳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어떤 목표는

너무 자연스러워 보여서

애초에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잊게 되는지 이해가 쉽습니다.


좋은 회사,

안정적인 자리,

성장하는 커리어,

계속 발전하는 자기,

이런 말들은

처음부터 자연의 법칙처럼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것을 좋은 것이라 부르고,

그 방향을 성공이라 설명하고,

그 형식을 정상적인 삶처럼 반복해온 결과

점점 더 당연한 현실처럼 굳어진 것입니다.


취준생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배우는 동시에

무엇을 좋은 출발이라 불러야 하는지도 배웁니다.


직장인은

어떻게 일할지를 배우는 동시에

어떤 경로를 성장이라 부르는지도 배웁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어디로 옮길지를 고민하는 동시에

무엇이 더 나은 이동처럼 보이는지를

이미 사회적으로 학습한 언어 안에서 판단합니다.


즉, 우리는

단지 목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목표라고 부를지부터

이미 만들어진 세계 안에서 배우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목표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해서

사람이 그저 수동적으로 끌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너무 익숙해지면

바깥의 규범이 안쪽의 욕망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철학자이자 사상가 Michel Foucault의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

권력이 단지 위에서 강제로 억압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를 관찰하고 교정하며

규범에 맞는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은

왜 우리는 남이 시키지 않아도

좋은 방향, 괜찮은 삶, 생산적인 경로를

자꾸 스스로 관리하게 되는지 보여줍니다.


취준생은

누가 매일 명령하지 않아도

좋은 지원자의 형식에 맞게 자기를 고칩니다.


직장인은

누가 늘 지켜보지 않아도

더 효율적인 사람, 더 성장하는 사람, 더 경쟁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입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단지 회사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자기 경력과 욕망까지 다시 정리합니다.


즉, 종착지는

밖에서 강제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이 스스로 원한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더 깊게 내면화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강요된 목표는

언젠가 의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욕망처럼 느껴지는 목표는

훨씬 늦게까지 의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목표를 내 것처럼 느끼게 되는 과정은

거대한 제도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일상적인 상호작용 속에서도

그 의미는 계속 만들어집니다.


사회학자 Herbert Blumer의

상징적 상호작용론(Symbolic Interactionism)

사람이 사물과 타인, 자기 자신을

고정된 의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의미를 바탕으로 행동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어떤 종착지가 개인의 내면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오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사람은

혼자 방 안에서만

성공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말,

친구의 반응,

조직의 평가,

채용시장의 언어,

SNS에서 반복되는 이미지,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의 형식을 통해

무엇이 좋은 삶인지 배웁니다.


누군가의 승진이

그냥 남의 일이 아니라

“저런 방향이 맞는 거구나”로 읽히고,


누군가의 이직이

그냥 이동이 아니라

“저게 더 나은 선택이구나”로 읽히며,


누군가의 안정이

그냥 그 사람의 조건이 아니라

“나도 결국 저기에 가야 하는구나”로 읽힐 수 있습니다.


즉, 종착지는

개인이 홀로 선택한 목적이라기보다

상호작용 속에서 반복적으로 의미가 강화된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삶을 선택한다고 느끼면서도

자주 비슷한 방향을 욕망합니다.


좋은 회사,

안정적인 자리,

성장 서사가 있는 커리어,

설명 가능한 성취,

남에게도 납득되는 이동.


이런 것들이

전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내게 맞느냐보다

이미 좋다고 합의된 형식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원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진짜 자기 욕망과

사회적으로 학습된 욕망을

자꾸 헷갈리게 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원해야 한다고 배운 것인지,

지금의 불안을 끝내줄 것 같아서 붙잡는 것인지,

남들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방향이라 따라가는 것인지가

점점 흐려집니다.


이 지점에서

“종착지는 정말 내 것일까”라는 질문은

철학적인 사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현실적인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내 것이 아닌 목표를

내 것이라고 믿고 오래 좇을수록

사람은 더 열심히 살면서도

점점 더 자기 자신과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취준생은

합격만 하면 괜찮아질 것 같다고 믿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그 다음 기준이 다시 열릴 수 있습니다.


직장인은

승진하면 괜찮아질 것 같다고 믿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도

또 다른 불안과 비교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회사를 옮기면 끝날 것 같았던 문제가

사실은 내가 계속 좇아온 종착지의 성격과 더 가까운 문제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길을 잘 고르는 일만이 아닙니다.


내가 가려고 하는 끝이

정말 내 삶에 맞는 끝인지,

내가 원한다고 믿는 그 목표가

정말 내 목소리에서 나온 것인지

다시 묻는 일도 필요합니다.


이건 모든 목표를 의심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 더 정확하게 사랑하고,

조금 더 정확하게 욕망하고,

조금 더 정확하게 선택하자는 뜻에 가깝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그저 좋아 보여서 원하는 것을

한 번쯤 구분해보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성공은 왜

이토록 개인의 꿈처럼 보이면서도

조직과 사회가 오래 써온 언어를 닮아갈까요?


왜 우리는

자기만의 미래를 꿈꾼다고 말하면서도

그 미래를 설명할 때는

놀랄 만큼 비슷한 단어들을 쓰게 되는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성공은 왜 개인의 꿈처럼 보이지만 조직의 언어를 닮아갈까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꿈은

진짜로 내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오래전에 만들어둔 문장 속에서만

꿈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글 보기 : 28. 개인의 성공도 왜 조직의 언어를 닮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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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erger, P. L., & Luckmann, T. (1966). The 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 A treatise in the sociology of knowledge. Anchor Books.


Blumer, H. (1969). Symbolic interactionism: Perspective and metho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Foucault, M. (1977).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 (A. Sheridan, Trans.). Pantheon Books. (Original work published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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