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사회적 문법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28
[내 욕망처럼 느껴지는 목표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이미 학습된 것일까?]
사람들은
성공을 말할 때
대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
내가 원하는 연봉,
내가 원하는 회사,
내가 원하는 삶.
그 말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꿈은 원래 개인의 것이고,
욕망은 원래 내 안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쉽기 때문입니다.
취준생도
자기가 원하는 첫 자리를 말하고,
직장인은
자기가 원하는 다음 단계를 말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더 나은 이동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면
조금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분명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성공을 설명하는 말은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안정적인 회사,
성장할 수 있는 자리,
인정받는 역할,
시장가치가 높은 경력,
더 나은 보상과 더 나은 브랜드.
물론 이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비슷한 문장으로
“내가 원하는 성공”을 말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우리는
그렇게 비슷한 것을
각자 독립적으로 원하게 된 걸까요?
아니면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조차
이미 어느 정도 배운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목표는 그저 “있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목표를 중요하게 여기는가가 사람에게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점부터 봐야 합니다.
심리학자 Tim Kasser와 Richard M. Ryan의
목표내용이론(Goal Contents Theory)은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론은 특히 돈, 명성, 이미지 같은 외재적 목표와
성장, 관계, 공동체 기여 같은 내재적 목표를 구분하며,
무엇을 중심 목표로 두는가에 따라
삶의 질과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성공이 개인의 꿈처럼 느껴지면서도
자꾸 비슷한 형태를 띠는지 이해가 쉽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목표를 갖는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어떤 종류의 목표를 더 가치 있게 느끼게 되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취준생은
자기 삶에 맞는 첫 자리보다
남들이 더 인정하는 첫 자리를 더 크게 욕망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은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일보다
겉으로 더 성장처럼 보이는 자리,
더 잘 설명되는 경력을 더 강하게 붙들 수 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내가 덜 소모되는 삶보다
더 좋아 보이는 조직, 더 높은 시장가치를 더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즉, 성공은
“내가 원한다”는 말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이미 어떤 목표가 더 가치 있어 보이도록
만들어진 세계 안에서 선택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꿈처럼 보이는 목표도
그 내용은 사회와 조직의 언어를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단지 목표의 내용만이 아니라
조직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도 함께 작동합니다.
사회학자 Gideon Kunda의
규범적 통제(Normative Control)는
조직이 사람을 통제할 때
단지 명령과 규칙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정체성, 헌신의 언어를 통해
사람이 스스로 조직이 바라는 방향을 원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성공이 더 개인적인 것처럼 느껴질수록
오히려 더 조직의 언어를 닮게 되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조직은
단지 “이 일을 하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자주
“이런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성장하는 사람,
주도적인 사람,
몰입하는 사람,
계속 배우는 사람,
시장을 읽는 사람,
스스로를 관리하는 사람.
이 말들은
겉으로는 자기계발의 언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직이 원하는 인간형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조직의 요구를 단지 외부 압박으로만 느끼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요구를 자기 목표처럼 내면화하기도 합니다.
더 주도적이어야 할 것 같고,
더 성장해야 할 것 같고,
더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언어가 너무 익숙해지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조직이 바라는 것을
점점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그때 성공은
개인의 꿈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조직이 오래 밀어온 가치의 문장을 닮게 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가면
왜 사람들의 성공 서사가 그렇게 비슷해지는지도 보입니다.
사회학자 Stephen R. Barley의
경력 스크립트(Career Scripts)는
경력이 완전히 개인의 즉흥적 선택으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조직, 사회적 기대 속에서
어떤 경로가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것처럼 읽히는
공유된 해석 틀을 통해 구조화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개념을 가져오면
왜 사람들은 성공을 “각자의 꿈”이라고 말하면서도
비슷한 궤적과 문장을 따라가게 되는지 더 선명해집니다.
취준생은
좋은 출발이 무엇인지에 대한 스크립트를 배우고,
직장인은
좋은 성장 경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스크립트를 배우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어떤 이동이 더 나은 이동처럼 보이는지에 대한 스크립트를 배웁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미래를 상상할 때도
완전히 백지 위에서 그리지 않습니다.
이미 사회가
그럴듯하다고 말해온 경로,
조직이 발전이라고 불러온 흐름,
시장이 경쟁력 있다고 칭찬하는 순서를
어느 정도 참고한 채 상상합니다.
이때 성공은
내 욕망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이미 쓰여 있는 스크립트 안에서만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꿈을 말하는 것 같아도
정작 그 꿈을 설명하는 방식은 자꾸 비슷해집니다.
더 나은 브랜드,
더 설득력 있는 이동,
더 성장 서사가 있는 커리어,
더 높은 시장가치,
더 “괜찮아 보이는” 미래.
이건 단지 유행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이 성공처럼 보이고,
무엇이 납득 가능한 미래처럼 보이는지에 대한
집단적 스크립트가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공은 왜 개인의 꿈처럼 보이지만 조직의 언어를 닮아갈까라는 질문은
개인의 꿈이 가짜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꿈이 얼마나 사회적 언어와 조직적 기대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더 정확히 보자는 뜻에 가깝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원해야 한다고 배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미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오래전부터 좋은 미래라고 불려온 형식을
내 언어로 다시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내가 지금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내가 살아보고 싶은 삶의 형식인가?
아니면
내가 오랫동안 부러워하도록 학습된 형식인가?
이 구분이 선명해질수록
사람은 남의 꿈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서 벗어나
조금 더 자기 삶에 가까운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다음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끝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속도일까요?
더 빨리 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정말 내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것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늦게 배우는 것은
어떻게 빨리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내 욕망이고 어디부터가
남이 써준 성공의 문장인지 구분하는 법인지도 모릅니다.
https://brunch.co.kr/@da710e75f6be463/30
Barley, S. R. (1989). Careers, identities and institutions: The legacy of the Chicago School of Sociology. In M. B. Arthur, D. T. Hall, & B. S. Lawrence (Eds.), Handbook of career theory (pp. 41–65). Cambridge University Press.
Kasser, T., & Ryan, R. M. (1996). Further examining the American dream: Differential correlates of intrinsic and extrinsic goal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2(3), 280–287.
Kunda, G. (1992). Engineering culture: Control and commitment in a high-tech corporation. Templ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