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순간, 방향은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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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리 가는 사람보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이 끝내 덜 흔들린다.]
사람들은 늘 속도를 의식합니다.
취준생은
누가 먼저 붙었는지를 보고,
직장인은
누가 더 빨리 올라가는지를 보고,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누가 더 좋은 곳으로 더 빨리 옮겼는지를 봅니다.
속도는 눈에 잘 띕니다.
누가 먼저 합격했는지,
누가 먼저 승진했는지,
누가 먼저 자리를 잡았는지는
비교하기 쉽고 설명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꾸 속도를 기준으로 자기 삶을 읽게 됩니다.
나는 늦은 것 아닐까?
나는 너무 뒤처진 것 아닐까?
나는 아직도 여기인데,
왜 저 사람은 벌써 저기까지 갔을까?
이 불안은
단지 성격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E. Tory Higgins의
자기 불일치이론(Self-Discrepancy Theory)은
사람이 현재의 자기(actual self)를
자신이 이상적으로 바라는 자기(ideal self)나
그래야 한다고 느끼는 자기(ought self)와 비교할 때,
그 간극이 커질수록 특정한 종류의 불편감과 긴장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속도 불안은 단지 남보다 느리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지금의 나와 ‘이미 이쯤 와 있어야 하는 나’ 사이의 간격을
계속 의식하게 될 때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사람은 단지 남보다 느려서가 아니라
“나는 지금쯤 달라져 있어야 한다”는 감각 때문에 더 흔들리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취준생은
단순히 아직 합격하지 못해서만 불안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직장인이어야 할 자기 모습과의 간극 때문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직장인은
단지 승진이 늦어서가 아니라
지금쯤 더 인정받고 더 성장해 있어야 한다는 자기 기준 때문에 조급해질 수 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단지 아직 회사를 못 옮겨서가 아니라
이미 더 나은 환경에 가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자기상 때문에 더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즉, 속도 불안은
밖의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세워진 기준과의 간격에서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래 살다 보면
조금 다른 장면도 보입니다.
빨리 간 사람이
반드시 끝까지 잘 가는 것은 아니고,
조금 늦게 간 사람이
반드시 늦게 도착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중간에 자기 방향을 잃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가더라도
자기 길을 더 오래 붙잡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좋은 길이란 단지 더 빨리 가는 길이 아니라
나와 더 잘 맞는 길일 수 있다는 점부터 봐야 합니다.
조직심리학자 Jeffrey R. Edwards의
개인-직무 적합성(Person–Job Fit)은
사람과 일이 잘 맞는다는 것이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직무 요구가 얼마나 맞는지,
개인의 욕구와 직무가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맞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방향이란 막연한 꿈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와
무엇을 하며 오래 버틸 수 있는지가 만나는 지점에 더 가깝습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방향이 속도보다 더 중요해지는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사람이 빨리 가는 것은
분명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에 맞는 사람인지,
어떤 일의 요구와 내가 잘 맞물리는지,
내가 어떤 방식의 일에서 덜 소모되고 더 살아나는지 모른 채 빨리 가면
속도는 쉽게 남의 속도가 됩니다.
취준생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단지 빨리 붙는 것이 아니라
내 역량과 욕구가 어떤 일과 더 잘 맞는지 아는 일일 수 있습니다.
직장인에게도
더 빨리 올라가는 것이
항상 더 좋은 경력은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방식의 역할,
내 욕구와 맞지 않는 일이라면
그 속도는 오래 갈수록 더 큰 소모가 될 수 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더 좋은 조건으로 더 빨리 옮기는 것이
항상 더 나은 이동은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실제로 맞지 않는 직무라면
그 이동은 방향을 찾은 것이 아니라
속도만 바꾼 이동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향은
단지 ‘맞는 일’을 찾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결국
어떤 목표를 중심으로 자기 삶을 조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조직행위학자 Edwin A. Locke와 Gary P. Latham의
목표설정이론(Goal-Setting Theory)은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가
사람의 주의와 노력, 지속성을 조직하는
강한 동기 기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목표는 단지 미래의 그림이 아니라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에 힘을 쓰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정렬하는 힘입니다.
이 이론을 가져오면
왜 속도보다 방향이 더 근본적인 문제인지 보입니다.
사람이 흔들리는 이유는
목표가 없어서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자주
너무 분명한 목표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흔들립니다.
좋은 회사,
안정적인 자리,
계속 상승하는 커리어,
시장가치가 높은 경력 같은 목표는
분명 사람을 강하게 움직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정말 나와 맞는 방향인지 묻지 않으면
사람은 대단히 성실하게
남이 써놓은 목적지를 향해 달릴 수도 있습니다.
목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만,
잘못 붙든 목표는
삶 전체를 강하게 끌고 가면서도
끝에 가서 공허함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향은
단지 속도를 늦추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내 삶을 끌고 가는 목표가
정말 내가 오래 붙들 만한 목표인지,
아니면 단지 더 좋아 보이는 목표인지 구분하자는 말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가면
왜 어떤 사람은 속도가 조금 늦어도 덜 흔들리고,
어떤 사람은 빨리 가도 자꾸 자기 길을 의심하는지도 보입니다.
심리학자 John L. Holland의
직업성격-작업환경이론(Vocational Personalities and Work Environments)은
사람의 직업적 흥미와 성향은 일정한 유형을 이루며,
사람은 자기 성향과 더 잘 맞는 환경에서
더 만족하고 더 안정적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은
왜 방향이 결국 더 오래 남는 기준이 되는지 잘 보여줍니다.
사람은
좋아 보이는 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내 성향과 너무 어긋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쪽에서는 계속 닳아갑니다.
반대로
속도는 조금 느려 보여도
내가 더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고
오래 버틸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길은 덜 화려해 보여도 더 단단할 수 있습니다.
취준생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갔는지보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더 살아날 사람인지 아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직장인에게도
더 빨리 올라가는 것보다
내가 어떤 방식의 조직과 역할에서 더 자연스럽게 기능하는지 아는 것이
더 오래가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자리보다
내가 덜 소모되고 더 일관되게 살아낼 수 있는 환경을 찾는 일이
결국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은
느리게 살아도 된다는 위로만은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비교의 기준을 바꾸는 말에 가깝습니다.
남보다 얼마나 빨리 가는가 보다
내가 정말 나와 맞는 일을 향해 가고 있는가,
지금 붙든 목표가 정말 내 삶을 오래 끌고 갈 목표인가,
이 환경이 정말 나를 살리는 환경인가를 묻게 만드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입니다.
왜냐하면 방향 없는 속도는
결국 더 빨리 지치게 만들고,
더 빨리 도착했는데도
왜 이곳에 왔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방향이 있는 사람은
조금 늦을 수 있어도
덜 쉽게 무너집니다.
비교가 흔들어도
다시 돌아올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은
낭만적인 문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불일치와 너무 많은 목표, 너무 많은 선택지 속에서
끝내 무엇이 내 삶을 오래 버티게 하는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질문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마지막 질문이 남습니다.
다들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정말
자기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이미 설계된 종착지를 향해 이동하고 있을 뿐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지점,
다들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것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어떻게 빨리 갈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끝내 어떤 삶을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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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s, J. R. (1991). Person-job fit: A conceptual integration, literature review, and methodological critique. In C. L. Cooper & I. T. Robertson (Eds.), International review of industrial and organizational psychology (Vol. 6, pp. 283–357). Wiley.
Higgins, E. T. (1987). Self-discrepancy: A theory relating self and affect. Psychological Review, 94(3), 319–340.
Holland, J. L. (1985). Making vocational choices: A theory of vocational personalities and work environments (2nd ed.). Prentice-Hall.
Locke, E. A., & Latham, G. P. (1990). A theory of goal setting & task performance. Prentice H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