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보다 먼저 읽히는 사람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팀 안에는 늘 성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먼저 움직이고, 갑자기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붙들고, 누군가 비운 자리를 메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회의 준비를 도맡고, 실수를 정리하고, 애매한 일을 대신 떠안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그를 “정말 열심히 한다”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인사 시즌이 오면 이상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조직은 모두의 노력을 칭찬하지만, 실제로 더 큰 기회와 더 넓은 역할을 받는 사람은 늘 비슷합니다.
이 장면을 단지 불공정이라고만 말하고 끝내면 속은 시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은 그렇게 시작하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분노보다 구조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많은데, 다음 단계로 올라서는 사람은 늘 비슷하게 보이는가?"
"왜 어떤 사람은 같은 조직 안에서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선택권을 얻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많이 써도 계속 현재의 일을 유지하는 데서 그치는가?"
이 질문을 제대로 묻지 않으면, 우리는 늘 비슷한 조언만 반복하게 됩니다. 더 열심히 하라, 더 성실하라, 묵묵히 버텨라. 하지만 현실은 이미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와 보고서들은 이 문제를 꽤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여성의 승진 사다리를 분석한 2025년 Women in the Workplace 보고서는 가장 첫 번째 관리직 승진 단계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남성 100명이 관리자 승진을 할 때 여성은 93명에 그쳤고, 그 격차는 이후 상위 단계로 갈수록 누적됩니다.
또한 보고서는 편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승진과 채용에서 명확한 기준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평가자에게 사전 편향 경고를 제공하며, 실제 승진 결과를 추적해 개선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이 말은 곧 반대로 말하면, 많은 조직에서 승진은 여전히 단순한 성과 합산이 아니라 해석과 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뜻입니다.
1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합니다.
늘 비슷한 사람이 올라서는 이유는, 그들이 언제나 가장 많이 일해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조직은 처음부터 모든 사람의 기여를 같은 방식으로 보지 못하고, 같은 무게로 축적하지 않으며, 같은 속도로 다음 기회로 연결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노력의 절대량’만이 아니라, 어떤 일이 기회로 번역되는 구조 속에 놓여 있는가입니다.
사람들은 승진을 생각할 때 자주 시험 성적처럼 상상합니다. 일을 잘하면 점수가 쌓이고, 점수가 높으면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고 믿습니다. 물론 일부 조직은 그렇게 작동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실제 승진은 그렇게 단순한 산수가 아닙니다. 승진은 대부분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포함합니다. 이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을 줘도 되는가, 더 넓은 업무를 맡겨도 되는가, 더 많은 사람을 이끌 위치에 둘 수 있는가, 조직의 얼굴로 세워도 되는가를 묻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승진은 현재 성과만이 아니라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장면에서 이름이 오르는지, 누가 그 사람을 알고 있는지, 조직이 그 사람을 어떤 유형의 인물로 읽고 있는지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같은 실무자라도 누군가는 늘 결과를 내는 사람으로 남고, 누군가는 다음 단계의 책임을 맡겨볼 만한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두 평가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현재의 업무 처리 능력에 대한 인정이고, 후자는 미래의 자리 배치에 대한 승인입니다. 승진은 이 두 번째 판단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늘 “일 잘하는 사람”으로 칭찬받지만 자리 자체는 바뀌지 않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더 큰 역할의 후보로 관리됩니다.
이때 조직은 완벽하게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승진이 미래에 대한 판단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해석의 영역을 넓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더 중요한 업무가 먼저 배정되는가, 누가 전략적 과제에 들어가는가, 누가 위 사람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갖는가, 누가 실수를 해도 다시 기회를 부여받는가, 누가 “저 사람은 좀 더 키워볼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가는 모두 시간이 지나며 차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후반에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대개는 초반에, 아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승진은 결과의 보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슷한 연차에도 더 많은 기회를 거쳤고, 더 중요한 상황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으며, 더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늘 바빴지만, 그 바쁨이 다음 단계의 증거로 남지 않는 일들에 묶여 있었을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결국 현재 실력의 차이라기보다, 무엇을 축적하게 되었는가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꼭 앞으로 가지는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조직의 일을 두 종류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누가 해도 조직이 굴러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일을 했을 때 개인의 다음 기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일입니다. 현실에서 이 둘은 겹칠 때도 있지만, 자주 어긋납니다.
미국경제학회(AEA)에 실린 Babcock 외 연구는 승진 가능성이 낮은 과업, 즉 모두가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수행자가 특별한 보상을 얻기 어려운 일에 주목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보고서 작성, 위원회 참여, 잡무성 조정처럼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경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과업에서 여성들이 더 자주 자원하고, 더 자주 요청받고, 더 자주 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이런 차이가 장기적으로 조직 내 수직적 격차를 강화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2026년 빈경제경영대학교(WU)의 최근 연구 소개도 비슷한 방향을 보여줍니다. 해당 연구에서는 팀 운영과 조직 유지에 필요한 자발적 추가 업무를 “office housework”, 전략적이고 눈에 띄는 고가시성 과제를 “office glamour work”로 구분하면서, 여성들이 전자에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더 많이 관여하고 후자에는 약 3분의 1 덜 관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평가 방식입니다. 같은 조직 유지형 과업을 수행해도 남성이 더 많은 인정을 받는 반면, 여성은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전략 과제에 들어갈 기회를 덜 얻는다는 점이 지적됩니다.
이 연구들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조직 안에는 단순히 일이 많은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일과 현재를 유지하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종종 두 번째 일을 아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도 첫 번째 일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그는 조직에서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래서 더 자주 현재 자리에 묶입니다. 문제를 수습하는 사람, 분위기를 관리하는 사람, 빈틈을 메우는 사람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그러나 조직은 그런 사람에게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더 큰 과제에는 다른 사람을 먼저 투입할 수 있습니다. 이미 현재 자리에서 너무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기는 역설을 우리는 자주 놓칩니다.
성실함은 조직 유지에 대단히 중요하지만, 성실함이 향하는 과업의 종류에 따라 미래는 전혀 다르게 열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된 일 덕분에 조직 내 신뢰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 신뢰가 “저 사람은 언제든 맡은 일을 잘 정리한다”는 수준에 머물면, 그것은 존중이지 반드시 이동의 발판은 아닙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덜 분주해 보이지만, 방향을 결정하는 과업, 성과가 외부에 드러나는 과업, 상위 관리자와 연결되는 과업에 반복적으로 들어가면서 커리어의 다음 단계를 준비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일하지만, 한 사람의 일은 현재를 소비하고 다른 사람의 일은 미래를 축적합니다.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이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절반만 맞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은 올라갈 가능성이 커지고, 올라갈 가능성이 큰 사람은 다시 중요한 일을 맡게 됩니다. 이 둘이 서로를 강화하기 시작하는 순간, 조직 안에서는 ‘늘 비슷한 사람이 올라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누적우위(cumulative advantage)의 문제로 설명해 왔습니다. DiPrete와 Eirich는 누적우위를, 처음의 상대적 이점이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 이득을 낳아 격차가 더 커지는 메커니즘으로 정리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차이처럼 보이더라도, 그 차이가 더 좋은 자원, 더 많은 인정, 더 넓은 기회로 이어지면 이후의 결과는 훨씬 더 벌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이 메커니즘은 교육, 소득, 지위뿐 아니라 커리어와 조직 내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에도 널리 활용됩니다.
조직 안에서 누적우위는 생각보다 평범한 방식으로 시작됩니다.
누군가가 우연히 중요한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그 프로젝트에서 윗선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는다.
그 경험 덕분에 다음 프로젝트의 후보가 된다.
한 번 더 이름이 오르고, 한 번 더 실적이 쌓이고, 한 번 더 ‘될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그러면 이후부터는 그를 선택하는 비용이 줄어듭니다. 이미 검증된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초기의 작은 배치 차이가 시간이 지나며 커다란 경로 차이로 바뀝니다.
여기서 핵심은 누적우위가 반드시 음모나 노골적 차별에서만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조직의 효율성 추구와 결합합니다. 사람은 불확실성을 싫어합니다. 관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한 번 잘했던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안전해 보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회의에 부르고, 이미 익숙한 사람에게 발표를 맡기고, 이미 믿는 사람을 외부 미팅에 데려가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이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될수록 조직은 새로운 능력을 발굴하기보다 이미 드러난 사람에게만 더 많은 기회를 몰아주게 됩니다. 그 결과 처음에 크게 다르지 않았던 사람들의 미래는 점점 달라집니다.
이 지점에서 “늘 비슷한 사람이 올라서는가”라는 질문은 조금 다른 문장으로 바뀝니다.
정말 그 사람들이 항상 더 뛰어나서 올라서는가.
아니면 이미 중요한 자원을 더 많이 배정받아, 더 눈에 띄는 장면을 더 자주 통과했기 때문에 올라서는가.
현실의 답은 아마 둘 다일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를 무시하면 우리는 커리어의 절반만 보게 됩니다.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또 하나의 요소는 후원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상사를 만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회의실 안에서 한 번 더 이름이 언급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성과를 스스로 설명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도 추천받고,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만 평가받습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Gallup은 멘토와 스폰서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멘토는 방향을 조언하고 성장을 돕는 사람이고, 스폰서는 기회의 문을 실제로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Gallup 자료에 따르면 직장에서 멘토가 있다고 답한 직원은 40%, 스폰서가 있다고 답한 직원은 23%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멘토나 스폰서가 있는 직원은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자기 조직이 자신의 경력개발 계획을 분명하게 제시한다고 느낄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았습니다.
이 수치는 단지 관계의 따뜻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가능성이 조직 안에서 어떻게 실제 기회로 연결되는가를 말합니다. 멘토는 당신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돕지만, 스폰서는 당신이 더 큰 무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밀어줍니다. 멘토는 충고를 주고, 스폰서는 부재중에도 당신의 이름을 꺼냅니다. 그래서 조직 안에서 올라서는 사람은 꼭 자기 일을 잘한 사람일 뿐 아니라, 자기 일이 다음 기회와 연결되도록 해줄 사람을 만난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점은 도덕적으로 불편할 수 있습니다. 실력만으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직은 순수한 실력 검정장이 아닙니다. 조직은 협업의 공간이고, 배치의 공간이며, 누가 누구를 신뢰하는지가 실제 자원 흐름을 바꾸는 공간입니다. 상사가 “이번 일은 저 사람이 맡아도 된다”라고 말해주는 한마디는 보고서 한 장보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반복적으로 같이 일해봤거나, 유사한 상황에서 믿을 만하다고 판단되거나, 그 사람의 미래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질 때 나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론이 단순한 인맥론으로 흘러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줄’ 자체보다, 누가 후원을 받을 만한 후보로 편입되는가입니다. 후원은 완전히 무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대개는 과거의 작은 신뢰, 제한된 기회에서 보여준 반응, 같이 일해본 경험, 역할 확장의 가능성 같은 것들 위에서 형성됩니다. 다시 말해 후원 역시 구조와 경험의 산물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한 번 후원이 붙으면 그 사람의 미래는 훨씬 빠르게 자라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누적우위의 한 형태입니다.
현실에서 승진은 과거의 평가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배치입니다.
그래서 조직은 종종 과거에 많이 기여한 사람보다, 앞으로 더 넓은 역할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움직입니다. 여기서 억울함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내가 더 고생했는데 왜?”라고 묻고, 조직은 “당신의 고생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으로 대답합니다. 이 “하지만” 뒤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커리어 구조입니다.
조직은 사람을 평가할 때 늘 현재 업무 성과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을 더 큰 과업에 넣을 수 있는가, 다른 팀과 연결해도 되는가, 외부에 내보내도 되는가, 조직 변화의 과도기에 버틸 수 있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구조를 잡을 수 있는가를 함께 봅니다. 그래서 승진은 종종 “가장 많이 한 사람”보다 “다음 단계에 배치하기 쉬운 사람”에게 먼저 갑니다. 이 판단은 때로 공정하고, 때로 편향적이며, 대개는 그 둘이 섞여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실무 현장에서는 자주 오해가 생깁니다.
많이 한 사람이 덜 인정받았다고 느끼고, 관리자는 더 큰 역할 적합성을 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두 말 모두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문제는 이 적합성이 언제나 명확한 기준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 본 Women in the Workplace 2025 보고서가 승진에서 명확한 기준 사용, 편향 사전 경고, 결과 추적을 개선 포인트로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승진이 미래 적합성 판단을 포함할수록, 기준이 모호하면 조직은 쉽게 기존 이미지와 익숙한 유형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늘 비슷한 사람이 올라서는 조직은 단순히 실력이 몰린 조직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적합성의 기준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거나, 기회를 주는 경험 자체가 일부에게 먼저 편중된 조직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뒤처지는 사람은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적합성을 입증할 기회를 충분히 받지 못한 채 평가받는 셈이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조직이 하이브리드 근무를 두고 논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집에서 일하면 덜 보이니 승진에서 불리하지 않을까. 회사를 덜 나오면 결국 중요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이 질문은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더 간다”는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4년 Nature에 실린 Nicholas Bloom 등의 무작위 통제실험은 조금 다른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중국 기술기업 1,612명을 대상으로 한 6개월 실험에서, 주 2일 재택을 허용한 하이브리드 근무는 이직률을 3분의 1 가량 낮췄고 직무만족을 높였지만, 향후 2년의 성과평가나 승진에는 유의한 차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스탠퍼드의 관련 소개 기사도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하이브리드 근무자는 전일 출근자와 비교해 생산성이나 승진 가능성에서 불이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재택해도 괜찮다”는 결론 때문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가시성의 문제도 결국 평가 구조에 의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즉, 사람들은 흔히 물리적 근접성만으로 승진이 결정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성과를 기록하고, 누구에게 어떤 과업을 배정하며, 승진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하이브리드 환경에서도 평가 구조가 안정적으로 설계되면 승진 격차가 반드시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사무실에 항상 보이는 환경이라도, 전략 과제가 편중되고 후원 구조가 닫혀 있으면 특정 사람에게만 기회가 몰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문제의 핵심은 “누가 더 오래 보였는가”만이 아닙니다.
더 앞선 문제는 “무엇이 기록되었는가”, “어떤 과업이 미래 가치로 인정되는가”, “누가 다음 기회의 후보군에 들어가는가”입니다. 결국 사람을 앞세우는 것은 단순한 존재감이 아니라, 존재감이 실제 자원 배분과 어떻게 연결되느냐의 구조입니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비극은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바쁩니다. 하루 종일 문제를 처리하고, 모두가 기대는 중심축처럼 움직입니다. 그런데 커리어는 이상할 만큼 제자리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겉보기에는 덜 분주한데, 시간이 지나면 더 넓은 자리로 이동합니다. 이때 주변은 쉽게 오해합니다. 후자는 정치적인 사람이고, 전자는 순수하게 일만 한 사람이라고 단정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구조를 놓칩니다.
현실에서 바쁨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조직이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바쁨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배치 가능성을 키우는 바쁨입니다. 전자는 문제를 수습하고 빈틈을 막는 데 탁월합니다. 후자는 방향을 정하고 영향력을 넓히는 데 기여합니다. 전자는 항상 감사받을 수 있지만, 후자는 더 자주 기록되고 설명됩니다. 전자는 눈앞의 운영을 지탱하지만, 후자는 다음 자리의 명분이 되기 쉽습니다.
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냉정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냉정함이 있어야만 이후의 전략도 생깁니다. 우리가 조직을 너무 낭만적으로 이해하면, 성실하면 언젠가 반드시 알아볼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물론 때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직은 생각보다 바쁘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제한된 정보만 갖고 판단하며, 관리자는 생각보다 익숙한 선택을 선호합니다. 이 조건 속에서 “언젠가 알아주겠지”는 전략이 아니라 기대에 가까워집니다.
따라서 이 장의 결론은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력의 방향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일을 많이 하고 있는가.
그 일은 현재를 지탱하는가, 아니면 미래의 다음 문을 여는가.
나는 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인가, 아니면 다음 단계로 움직일 사람으로도 읽히는가.
나는 신뢰를 얻고 있는가, 아니면 편리함만 제공하고 있는가.
나는 반복해서 중요한 과제에 투입되는가, 아니면 늘 급한 과제의 정리자로 남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아주 성실하게 자신의 현재를 강화하면서 미래는 비워둘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은 원래 잘났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뛰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설명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조직에서는 유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기회가 유난히 한쪽으로만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개인의 재능을 넘어서야 합니다. 조직은 어떤 기준으로 과업을 배분하는가. 잡무와 전략 업무는 어떻게 나뉘는가. 스폰서는 누구에게 붙는가. 승진 기준은 얼마나 명확한가. 편향을 바로잡는 장치는 있는가. 이미 한 번 선택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반복되는 구조를 완화할 방법은 있는가.
최근의 보고서들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도 이 점입니다. 승진 초기 단계의 격차를 줄이려면 명확한 기준, 결과 추적, 편향 완화 장치가 필요합니다. 비가시적 잡무가 특정 집단에 쏠리지 않게 하려면 자원봉사 방식이 아니라 순환 배정이나 관리자 개입이 필요합니다. 후원 구조가 닫혀 있다면, 누가 성장 기회에 접근하는지 공개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즉, 앞으로 가는 사람을 둘러싼 차이는 개인이 더 열심히 하느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고, 조직이 무엇을 일로 인정하고 무엇을 미래 자산으로 취급하는지의 설계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 말을 책의 첫 장에서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래야 독자가 이후의 장을 잘못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원래 다르다”는 결론으로 독자를 밀어 넣으려는 책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보통의 조직, 평범한 자리,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왜 어떤 사람은 점점 더 많은 기회를 통과하고,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 오래 남는지 그 메커니즘을 보려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출발점은 언제나 능력 그 자체보다 조금 앞에 있습니다.
어떤 일에 배치되는가.
어떤 과업이 인정되는가.
어떤 관계가 문을 여는가.
어떤 기준이 사람을 선별하는가.
이 문제를 먼저 보지 않으면, 이후의 모든 설명은 자기 계발의 언어로 흘러버립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모든 열심히 같은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열심은 조직을 오늘 하루 더 잘 돌아가게 만듭니다.
어떤 열심은 조직 안에서 신뢰를 쌓습니다.
어떤 열심은 남이 싫어하는 일을 대신 맡게 합니다.
어떤 열심은 상사의 부담을 줄여줍니다.
그 모든 열심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중 일부만이 미래의 더 큰 기회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커리어의 차이는 노동량의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이 어떤 구조 속에서 쓰였는가의 차이로 설명됩니다.
늘 비슷한 사람이 올라서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많이 일한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반복 투입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성실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후원을 받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초기의 작은 기회가 계속 다음 기회로 이어진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조직은 그것을 막을 만큼 투명한 기준이나 균형 장치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성공은 단순히 능력의 총합이 아닙니다.
능력은 기회와 연결되어야 하고, 기회는 반복을 낳아야 하며, 반복은 격차를 키웁니다.
그러므로 커리어를 이해하려면, 사람의 실력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 먼저 놓이는 문들을 봐야 합니다.
누가 어떤 문 앞에 먼저 서는가.
누가 문을 열어줄 사람을 만나는가.
누가 통과하고 나서 다시 다음 문 앞으로 이동하는가.
늘 비슷한 사람이 올라서는 이유는, 그들이 언제나 더 열심히 살아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열심히 더 자주 다음 문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문제를 한 걸음 더 좁혀서 보게 됩니다.
조직은 왜 성과를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실력보다 먼저 ‘인식’이 움직이는가.
그러나 그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첫 장에서 분명히 붙들어야 할 문장은 하나입니다.
"문제는 늘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대다수 문제는 먼저 기회가 배치되는 방식 속에 있다는 게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