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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듯 닿지 않는

언제쯤 홀아웃할 수 있을까

by Even today


이 직종에서 8년.
꽤 고인물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어쩌다 이 길을 이렇게 오래 걷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흘러가는 대로 흘러오다
이제는 내 의지로 물꼬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가고 있다.

뒤돌아보니 직선이 아니었다.
도그렉 홀처럼 구불구불 돌아왔고,
벙커에도 빠지고, 물에도 빠지고,
그린 코앞에서 터덕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지금의 나는
이 모든 여정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다시 8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니.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
너무 고되었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들이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든 걸 알면서도
결과만 보면, 그렇게 대단한 걸 이룬 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20대에
이만큼 다양한 감정과 숙제를 겪어냈다는 사실엔 조용히 만족하고 있다.

며칠 전,
호주 오기 전 블로그 일기를 우연히 봤다.
“어짜피 뭘해도 후회할거니까 그냥 하자"
그 말이 왠지 울컥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고, 바로 실행하고,
공부하고, 비즈니스로 이어지게 만들고,
골프 잘 치기.’
이건 오래된 숙제 같았다.

나는 골프과를 나왔지만,
누가 봐도 ‘선수’는 아니었다.
그저 골프를 즐기던 체대생이었고,
비즈니스와 마케팅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골프과 출신 = 프로’라는
보이지 않는 기대 앞에 스스로 움츠러들었고,
점점 더 골프채를 놓았다.

호주에 와서도 골프장이 가까이에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멀리했다.
그러다 우연히 다시 골프채를 잡았고,
마치 자석처럼 다시 빠져버렸다.
어릴 적 익숙했던 몸의 기억이,
내게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안다.
비교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남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질투 섞인 말 한 마디에 스스로를 접었다.
도전을 망설였고,
전략 없이 그저 스코어만 좇았다.
그건 골프도,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언제쯤 홀아웃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이 모든 고민이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오늘 이 정도면 다 했다”, "내 목표는 여기까지"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내 욕심은 언제나 더 나아가고 싶어 할 테니까.
그걸 깨닫는 지금 이 순간,



끝은 알 수 없지만, 내 삶과 내 공 모두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끝없이 끝없이
한 타 한 타 정성껏 쳐 나가야 한다는것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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