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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의 끝은 모르겠지만,

불안 속에서 내가 붙잡은 것들

by Even today


Wollongong 어느 강변




낯선 땅, 낯선 문화.
뿌리 하나 내리기조차 힘든 이곳에서 벌써 8년을 살았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전히 깜깜하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고,
변수는 예고 없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 갑갑함을 남 탓할 수는 없다.
어느 누가 “내 인생은 한 치의 굴곡 없이 평탄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시작점이 앞서 있었느냐 뒤에 있었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길의 끝에서 누가 더 크게 웃을지는
가봐야 아는 일이다.

0에서 출발해 100을 얻은 것과
99에서 1만큼 노력해 100을 만든 것이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어릴 땐 그런 생각도 했다.
어차피 결과가 100이면, 이왕이면 99를 갖고 시작하고 싶다고.
요즘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하곤 한다.
99를 가지고 시작해서 200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겉으로 보면 결과는 같아 보여도,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생각의 깊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장갑을 벗을 때까지 결과는 모른다.





잠깐 빛을 보고 “이 정도면 됐어”라며 멈추는 것과,
로리 맥길로이처럼 끝까지 달려가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것.
그 둘을 누가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장면을 보고
“나는 그렇게까지 간절했던 적이 있었나?”
문득 돌아보게 된다.




돈이나 스코어를 떠나
그들의 태도, 자존감, 삶을 대하는 방식은
결코 같지 않다.

아마추어인 나도,
가끔은 9홀만 돌고 핸디캡을 초과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속상해서 기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잘 치는 나도, 못 치는 나도
모두 ‘진짜 나’라는 걸.

98개 친것도 나이고, 80개 친것도 나야


그 후부터는
“이제 몸 풀었으니 진짜 시작이다”
라고 생각하며 남은 9홀을 맞이한다.



결과는 다르지만 과정은 큰 차이가 있다.


생각을 바꾸면 템포가 돌아오고,
리커버리도 쉬워진다.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전반에서 두어번 트리플 하면 그냥 포기한 상태로, 좌절한 상태로 홀 끝까지 갔더랬다.




삶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 순간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붙드는 것.

그게 중요하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견디는 것.
나는 그걸 선택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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