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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치는 시간에 담긴 나

순간순간 담겨있는 내 진짜 모습

by Even today


골프가 아니었으면, 나는 나를 아직도 몰랐을 것이다.

스코어카드를 들고 돌아보면, 나는 남에게는 관대하고 나에게는 철저한 사람, 혹은 정직한 사람이었던것같다.



공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몰래 공을 떨어뜨리거나, 한 타를 빠뜨리는 사람도 많다는 걸 컴페티션을 하며 알았다.



이해는 된다. 돈이 걸려 있거나, 핸디캡 유지에 급급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게 골프는 남을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어제의 나를 이기는 스포츠다.

그래서 나는 28오버가 나와도 스코어카드에 전부 적었다.
잘 친 날도, 못 친 날도 기록해 둬야 진짜 나를 볼 수 있으니까.
핸디캡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 골프에는 주체성이 생겼다.
편차가 줄었고, 이유를 알며 고치고, 책임도 내 몫이 되었다.
그게 내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정직하게 바라보고, 단단해지는 것.

두 번째로 알게 된 나는, 불편한 감정을 피하려 드는 사람이다.
동반자가 화를 내면 ‘괜찮냐’는 말 대신 못 본 척 한다.
내 감정이 휘말릴까봐, 괜히 한마디로 더 상처 줄까봐.
그러나 골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나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입을 다무는 것, 그것이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알고는 있었던것같은데 굳이 시간들여 나는 그런사람이야 라고 단정짓지는 않았었지.


하지만 분명 그것도 나였다.

세 번째는, 연대감이다.
혼자 하는 스포츠만 해와서 그런지 ‘같이’에 무감각했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4 ball ambrose일 줄은.
버디가 쏟아지고, 서로를 응원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그 시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팀워크, 믿음, 함께의 즐거움.
엠브로스를 함께 해보고 싶은 사람도 생긴다.
나는 혼자만 잘나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인데 말이다.

이 모든 건 나의 일상과 닮아 있다.

그리고 모든 골퍼들에게 해당될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알 수 없었다.

골프를 통해야만 볼 수 있었던 내 모습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것을 알기 전에는,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이해하겠는가.


그래서 골프를 치다 보면 문득문득,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건 불편해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어쩌면 골프는 명상처럼,

나를 위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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