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와 과정을 바라보는 모습
과정에 집중한다는 허상
컴페티션에 처음 나가기 전까진 룰도, 매너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골프가 좋았고, 공이 잘 맞으면, 스윙이 예쁘면 그게 전부라 여겼다.
하지만 첫 대회를 치르고 나서 욕심이 생겼다. 잔디밥 좀 먹은 티를 내고 싶어졌고, 온갖 꿀팁 샷들을 알게 되었다. 나름의 공략지도 머릿속에 그리며 라운드를 하게 되었다.
그 즈음부터 연습은 뒷전이 되었다. 두 시간쯤 여유가 생기면 연습장보단 라운딩을 돌았다. 뭐든 과하면 안 좋다지만, 너무 재밌어서 자꾸 코스로만 나갔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공이 ‘지나가며 맞는’ 스윙이 아니라 ‘맞추려는’ 스윙이 되어버렸다.
결국 컨트롤은 무너지고, 생크, 뽕샷, 페이드와 드로우, 탑핑과 뒤땅—한 라운드에서 수십 가지 스윙을 하는 느낌이었다. 일정한 리듬도, 감도 사라졌다.
흥미도 조금씩 식어갔다. 스코어가 이럴 바엔 차라리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다 두어 주 정도 골프채를 내려놓고, 멀리서 골프를 바라봤다.
그제야 보였다. 문제는 오로지 결과만을 쫓았다는 점이었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고, 연습은 10분도 하지 않으면서 늘 좋은 결과만을 기대했다. 기대치는 높고, 노력은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내 몸에 저장된 스윙만 믿고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르려 했고,
퍼팅과 숏게임이 가장 약한 줄 알면서도 오히려 샷보다 연습을 덜 했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골프는 잘 친 샷보다 못 친 샷이 더 많은 스포츠다. 그래서 ‘리커버리 스포츠’라 불리는 거다.
결국 중요한 건 나쁜 상황에서 얼마나 잘 빠져나오는가—그 연습이었다.
물론, 과정만 좋으면 된다는 말도 환상이고 허상이다. 가끔은 당근처럼 결과가 따라줘야 한다.
그래야 그 고된 과정이 버틸 만해진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것은 나를 아는것
항상 스코어는 내 실력이 수치화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전반에 스코어가 무너지면 후반에는 마음까지 무거워졌다.
악순환이었다. 전반보다 더 나쁜 후반.
하지만 이런 내 문제를 스스로 자각하고 나서,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순 없어.”
그때부터 동영상을 찍어 분석했고, 각 홀에서 잘하는 부분과 약한 부분을 나눠봤다. 롱게임이 문제인지, 숏게임이 문제인지도 비교 분석했다.
그랬더니 내 샷 거리, 구질상 어쩔 수 없이 어려운 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홀을 만날 땐,
‘보기만 하자. 더블 안에서 끝내자.’
이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가니 실망도 줄고, 오히려 잘 풀리면 기쁨은 더 컸다.
파도, 버디도 좋지만 보기만 해도 팔짝 뛸 듯 기뻤다.
그걸 깨닫고 나니, 이건 단지 골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생에서도 정말 중요한 건
자기 객관화,
그리고 잘했을 때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마음,
파가 아니어도 감사할 줄 아는 자세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는가.
나 자신도 모르면서 어떻게 세상을 헤아리겠는가.
결과에 휩쓸리지말고 끌려다니지 말것
삶에도 언제나 스코어는 존재했다.
성적, 돈, 외모, 직장, 대학, 연봉, 팔로워 수…
하지만 이 스코어에 집착하면,
페어웨이에서 보내는, 내 삶의 그 모든 시간을,
즉 ‘과정’을 즐길 수 없다.
이 작고 소중한 깨닳음이 있고선
내가 골프를 하는것이지
골프 스코어카드에 끌려 다니는 일은 없어졌다.
(물론 매일 잘치고 싶은 욕심이야 있겠지만...)
이젠 건강, 돈, 일 같은 삶의 스코어 앞에서도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건강은 소중하지만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돈은 필요하지만 ‘돈돈’대는 사람이 아닌
이것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돈으로 무언가를 살때
정말 필요한지를 묻는 눈을 갖기로.
그리고 내 일하는것의 감사함, 소중한 마음을 갖기로.
스코어를 내려놓는다는 건 포기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나를 믿어주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 나의 시간,
그 무수한 노력의 기록들.
그것을 바라보는 연습이
지금 내가 골프로부터 배우고있는 삶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