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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설레는 혼자 골프

혼자서의 첫 라운드

by Even today


혼자 골프 연습장에 간 적은 많았지만, 혼자 라운드를 돈 적은 없었다.
지루할 것 같기도 했고, 친구도 없어 보일까 봐 그랬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주변에 골프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굳이 혼자 칠 생각은 잘 안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특별한 계기로 혼자 티타임을 잡아 라운드를 하게 됐다.
티오프 전, 괜히 설렜다. 공도 두세 개씩 치며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날은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다만, 그때는 골프 슬럼프가 심하던 시기였다.
공이 뜨지도 않고, 굴러 굴러 물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슬럼프의 해답은 연습장에 없었다.

혼자라서 해볼 수 있었던 것들

어느 파3에서, 매일 치던 거리와 같은 클럽으로 다섯 번쯤 쳤다.
정상적으로 온그린되는 공은 하나 있을까 말까였다.
알고 보니, 티잉 그라운드보다 그린이 훨씬 높고, 바람도 강하게 불고 있었다.
공이 나쁜 게 아니라, 내 시야가 좁았던 거였다. 잘못된 판단이 반복된 결과였던 것이다.

그날은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다.
타이트한 그린 앞에서는 우드로 쳐봤고, 어프로치 대신 퍼터로 굴려보기도 했다.
잘 되든 못 되든, 누구 눈치도 안 보고 내가 상상한 플레이를 마음껏 해봤다.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꼭 이렇게 혼자 와야겠다.’
이 생각이 꽤 강하게 남았다.
혼자여서 가능했던 실험, 혼자여서 가능했던 몰입,
혼자여야만 만날 수 있는 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프도 삶도, 결국 혼자부터

진짜 나를 알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한다.
그건 삶에서도, 골프에서도 통하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난
골프로 인해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


골프는 개인 스포츠이면서도 함께 걷는 스포츠.
실력, 인성, 감정 조절, 배려—모두 개인의 몫,

그러나 함께하는 스포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칠 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 생판 모르는 사람과 칠 때도 많다. 그래서 좋다.



줍음 많은 나는 오히려 모르는 사람과 말없이 공을 치고, 묵묵히 걷고, 20살, 30살, 40살 차이 나는 사람과도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너무 좋아 오늘도 나는 혼자 혹은 낯선 사람들과 공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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