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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걸의 골프장 인사론

모르는 사람과 하루를 함께하는 법

by Even today


골프장에서는 왜 그렇게 인사를 많이 할까?

나는 인사를 잘 하는 편이다.
가끔은 인사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습관처럼 인사해 놓고선,
'내가 왜 했지?' 싶은 순간도 있다.

학창 시절엔 인사가 너무 당연했다.
얼굴도 모르는 다른 과 학생에게도 인사를 했다. 선배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체대생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거다.

그땐 인사가 중요하다는 걸 몰랐다.
의례적인 행동일 뿐, 별 쓸모 없는 형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고,
“요즘 스코어 어때요?” “잘 지내시죠?” 하고 물어와 주면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런 동생들 앞에선 마음이 툭, 열린다.
먼저 다가와주는 어른들에게는 더 깍듯해진다.

어느샌가 나도
'먼저 다가가기보단, 다가와주는 게 익숙해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점점 어렵고, 두렵고, 솔직히 말해 귀찮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며, 어른인 척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골프장에선 모르는 사람과 플레이할 일이 많다.
특히 호주에선 주말마다 골프를 치다 보면
한 달에 6~7번은 생판 처음 보는 사람과 라운드를 하게 된다.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다르다.

10분 전, 티박스 근처에서 서로 얼굴을 보고 묻는다.
“Are you Sieon Park?”
이름을 확인하고, 통성명을 한다.
시합일 경우엔 이름과 핸디캡이 함께 표시되기에 미리 상대를 알 수 있다.

경쟁이라기보단, 한 팀처럼 함께 플레이하며
공을 찾아주고, 라이를 알려주고, 코스 정보를 나눈다.
그런데 이 모든 건,
**“시작할 때 인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아무 인사 없이 티박스로 걸어 올라간다.
그럼 괜히 무례하게 느껴지고, 나도 그 사람처럼 무신경해진다.
그래서 되도록 먼저 웃으며 다가가 말을 건다.
“몇 시 티오프 누구 누구 맞으세요?”
“홈코스세요?” “골프는 얼마나 치셨어요?”
기본적인 이야기 몇 마디만 나눠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이런 순간들을 지나고 나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관계란 원래 그렇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
대단한 사건이 아니어도
스쳐가는 말 한마디, 인사 한 줄이 마음을 열게 하고,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지게 하는 일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연결이 되는 것 아닐까.

처음엔 그저 다정한 제스처라고 여겼던 인사들이
생각보다 큰 여운을 남긴다.
먼저 말을 건 내가, 때론 어색했지만 잘했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많다.

예전엔 한국 사람이면 다 반가웠다.
하지만 이곳에서 8년을 살다 보니, 이제는 아는 사람도 때로는 모른 체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 반성하게 된다.
관계의 시작을 여는 인사 한 마디,
그 속에는 예의, 거리 조절, 그리고 유대감이 함께 담겨 있다.

골프장에서의 인사는
그냥 실용적인 절차만이 아니다.
감정의 결까지 담겨 있다.

누군가가 웃으며 다가오면 괜히 반갑다.
반대로, 눈도 안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 사람을 다시 보고 싶지 않게 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인사의 출발점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18번 홀.
깃대를 꽂고, 모자를 벗고, 손을 한 번 슥 닦은 후,
네 명의 동반자에게 말한다.
“오늘 정말 잘했어요.”
“당신 덕분이에요.”
“또 꼭 같이 치자고요.” "맥주한잔 할까요?"하며 마무리하는
그 순간이 이상하게 멋지다. 신사적이고, 괜히 뭉클하다.

이 작은 순간들이
글로 옮기고 나니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구 반대편의 낯선 골프장에서,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종교도, 가치관도 전혀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같은 티타임에 서게 되는건 생각보다 놀라운 일이다. 아무 인연도 없던 우리가 그렇게 하루를 걷고 웃고 응원한다는 것- 그게 인연이 아니면 또 뭐가 인연일까?



그 우연 속 필연같은 인연을 위해 오늘도 나는 먼저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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