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끼리끼리, 결이 맞는 그런 우리
사노라면 우연하게 결이 맞는 사람과 닿게 되는 행운이 있다.
함께 졸업한 학교, 하지만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기억이 없던 동기.
그리고 10년 후, 지구 반대편에서 골프를 다시 시작하던 내 앞에 그 친구가 레슨프로로 나타났다.
호주에 온 지 5년, 다시 골프채를 잡은 그 시점에서 만난 인연이라니. 기가 막히다는 표현 말고 뭐라 해야 할까.
처음엔 그저 신기하고 반가웠다. 나보다 어린 친구가 프로 투어도 뛰고, 이제 막 레슨을 시작한 타이밍 같았기에,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도 솔직히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은 첫 레슨에서 사라졌다.
레슨 방식은 열정적이고 체계적이었고, 스윙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골프를 가르치는 일을 정말 즐기는 사람이라는 게 보였다.
"가르치는 것"과 "잘 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인데, 그 둘을 함께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 셈이다.
우리는 레슨이 끝난 후 클럽하우스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그때부터 조금씩 가까워졌다.
사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낯을 많이 가리고 말수가 적은 편이라,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편했다.
편안함이란, 어쩌면 결이 맞는 사람에게서 오는 신호 같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내 남자친구가 '머리를 올리던 날'이었다.
우리는 공을 잃어버리기 바빴고, 뒷팀은 계속 밀렸다.
플레이는 느려졌고 나였으면 솔직히 속이 좀 답답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연이와 그 남자친구는 묵묵히 기다려주고, 우리가 덜 불편하게 하려고 더 애써주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마음이 고마웠다. 잘 치는 것보다, 그런 동반자의 태도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라운딩을 갈 때면 우리는 소풍 가듯 준비한다.
나연이는 늘 점심거리를 준비하고, 나는 마실 것을 챙긴다.
투어 프로의 시원한 드라이버 샷을 보며, 때로는 코스를 읽는 팁을 슬쩍 배우며, 그리고 그 틈에 나누는 수다와 간식들.
골프도 좋지만, 그 하루의 공기 자체가 좋다.
<kLpga tour pro, 음나연>
예전에 나연이가 호주 open에 예선통과해 큰 대회를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나연이 부모님을 뵈었다.
나연이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끼리끼리 결이 맞는 사람과 사귀면 잘 지낸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그런 친구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오지랖, 적당한 걱정.
부담 없이,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는 지금도 골프장에서 만나는 사람 중
"왠지 모르게 또 같이 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 이름 중 하나는, 조용히 나연일 거다.
<나연과 같이 라운딩 하다 홀인원 했던 공>
그날의 스코어는 금세 사라졌지만, 그의 따뜻한 태도는 지금도 자꾸 떠오른다. 또다시 함께 걷고 싶은 친구를 호주에서 운 좋게 만났고,
첫 만남과 첫 라운딩에서의 따뜻한 말투와 배려 깊은 눈빛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반짝인다.
나도 함께 공을 치면 스코어보다 더 진한 무언가가 남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