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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천사 Nov 26. 2023

중퇴해도 괜찮아

더 나은 선택

코로나 바로 전, 2019년

잘 다니던 유치원이었는데

9월 어느 날...

등원버스가 왔을 때, 아이는 강하게 탑승을 거부했다.

늘 함께하던 일곱 살 형누나들과 다섯 살 동생들이 아들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장소에서 또 태워야 할 아이들이 있는 기사님은 우리 아들을 마냥 기다려줄 수 없어 일단 출발하셨다.


그냥 그런 날.

어른인 나도 회사에 가기 싫은 날이 있었고,

학생인 나도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 있었으니,

아들도 그런 날이겠거니 하고 그날은 함께 데이트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마무리를 했다

그런데 그날을 시작으로 아이는 더 강하게 등원거부를 했다.

나에겐 프리랜서지만 출근해야 할 직장이 있었고

그러려면 아이는 등원을 해주어야 했다.

아이를 데리고 개별등원을 하면서 아이를 설득하고 또 설득하던 시월의 어느 마지막날즈음.

아들은 표효했다.


"내가 왜 여길 들어가야 하느냐고요~!!!"


여섯 살 아들의 절규 아닌 절규는 나로 하여금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는 의문을 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월의 마지막날,

퇴소를 결정했다.


아이는 나오자마자 그간 있었던 일들을 쏟아냈다.

두 시까지 정규 일정을 마치고 시작된 통합반에서  형님들이 안경을 벗기고, 옆구리를 꼬집었다고. 


몰랐다.

전혀 몰랐다.

1년 반이상 너무나 잘 다니고 있던 유치원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했다.

그동안 몰라서 너무나 미안했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으리라 위안 삼으며

이제라도 알게 돼서, 이제라도 이렇게 표현해 주어 다행 었고 고마웠다.


주변 지인들은 아이말만 믿을 수 없지 않냐 하지만

엄마인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랴!


그렇게 우린 매일 아침 나가서 박물관으로 도서관으로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다. 그동안 몰라주었던 아이맘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듯.

아이한테만 집중하고 싶었다.




세 돌까지 데리고 있다가 어린이집 반년정도 보내고

너도나도 보내고 싶어 하던

유치원이었기에 잘 다녀주는 아들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로는 달랐다.

오히려 일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를 다섯 시에 데리러 갈 때 아들은 엄마가 보고 싶었으리라.


유치원중퇴.


어린 나이지만 그렇게 표현해 주어 너무 고마웠고

연이어 코로나로 인해 연이어 집에만 있어야 하는 날도 많았지만, 중고등학교 중퇴가 아닌 (사실 중고등학교 중퇴여도 난 여전히 아이를 응원해주고 싶다) 유치원 중퇴 아닌가.


덕분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좋다던 시댁과도 적당한 거리가 생겼고, 원하던 혁신학교에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유치원 퇴소후, 보내고 싶었던 학교 탐방 중에 찍은 사진.

아이는 지금 이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롭게 <슬기로운 초등생활>을 보내고 있다.

당시의 선택에 혹자는 후회가 없느냐 할지도 모르겠으나 덕분에 아이와 오붓한 시간을 가졌던 그 시기는 지금도 앞으로도 아이와 나의 끈끈한 무엇이 되어 우리를 지탱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항상 응원할게,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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