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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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실제로 일어나는 많은 현상, 사건들을 모두 반영하지 못해서, 그 사회의 시간적, 공간적 감수성에 공감하는 인간이라면 적당히 이해할 수 있는 어휘로 그 현상들을 퉁 쳐버리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라는 말이 나한테 그랬고 ‘사랑’도 그랬지요. 그래서인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립니다. 왜 같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게되는 걸까요.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 용법에 따라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듬어지지 않은 ‘사랑’이라는 어휘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복잡스런 단어가 되어버렸어요.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충성의 표현처럼 들리다가도, 그저 욕구를 뜻하는 표현으로도 쓰이니 말입니다(어쩌면 성욕을 사랑으로 포장하려는 욕구는 기독교적 윤리관 아래에서 자신의 더러운 신체적 욕구를 사랑이라는 언어로 정화하려는 일종의 대사회적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욕구를 지금의 우리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막연하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그 사랑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을 인용하곤 합니다. 베르테르의 금기적 사랑과, 마담 보바리의 낭만적 사랑, ‘Her’의 테오도르의 사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시의 사랑, 스탕달의 사랑,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카사노바의 사랑, ‘조제’의 사랑.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퉁쳐 부를 수 있다는 사실로 봤을때, 사랑은 어쩌면 현상학적 용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는 원인으로 추측할 수 있을만한 어떤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자’ 뭐 이런식 일수도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구체적인 사건 없이는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가능조차 안되는 것이지요.


위에 나열한 사랑의 종류들이 사랑을 횡으로 잘라 분류한 것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종으로 잘라 분류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에게 도취되는 사랑과, 그렇지 않은 사랑으로 말입니다. 이게 내가 사실 정말 하고 싶은 말입니다. 나는 기존의 사랑이 자기에 도취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 사랑의 의미를 사랑이라는 말로부터 추방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편의상 이 사랑을 ‘사렁’이라고 부르려고 했었지요. 그렇지만 대체 사랑이라는 말에 어떤 엄격한 힘이 있기에 어떤 말들은 오랜 시간 그렇게 쓰여왔음에도, 사랑이라고 부를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걸까요. 사랑이라는 단어의 권위를 빼앗자, 자기에 도취되는 사랑을 사랑이라는 말로부터 추방할 수 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만, 사렁과 사랑을 나누는 방법은 꽤 편리합니다.


사렁은 요컨대 이런거지요. 성적인 끌림을 느낀 두 대상이 연애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가, 연인이 할 법한 일들을 하며 만족감을 느끼는 행위 말입니다. 그리고 연인이라는 신분을 만끽하는 것이지요. 그 순간 그들은 자신이 아닌 연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욕구보다 연인으로서 의무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지요. 이런 현상을 우리는 사랑을 한다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때 사랑은 자신에게 취했다가, 그 취기가 빠지는 과정입니다. 연애하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이걸 사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럼 어떤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자신에게 취하지 않고 하는 사랑이지요. 자기를 두 발로 버틸 수 있는 사람 개인이, 본능적으로 끌리는 경향인 도취로부터 멀어지려고 애쓰며 하는 사랑이요. 종교적인 사랑만큼 아주 어려워 보이기도 하는데, 또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요. 지금 내가 하는 사랑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은 언제나 아픕니다. 나의 연애사는 ‘사렁’에서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투쟁의 연속이였습니다. 그 투쟁은 연애와 연애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발전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한 연애 안에서의 투쟁인 경우가 대부분이였지요. 당신은 어떤가요. 나를 잃지 않는 사랑을 하나요. 사렁이 아닌 사랑은 로맨틱하지 않다고 생각하나요. 사랑이 사렁으로 빠지는 이유가 본질적 불안 때문이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큰 화두를 던지며 정리한 개념에 대해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렁을 어떻게 가치판단 할 수 있을 것 같은지, 로맨스와 키치는 어떻게 다른지, 사렁의 이유가 정말 불안 때문인지, 당신의 삶에 사렁도 사랑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