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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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작은 일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걸 좋아합니다. 사랑은 물 같아서, 어디에 가져다 붙이든 그에 꼭 맞게 스며들거나, 모양을 갖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저에게 있어

‘사랑’과 ‘서랑’ 사이를 예민하게 파고드는 당신의 사랑이 참 신선하네요. 재미도 있구요.


사랑은 현상이 맞다고 느낍니다. 당신이 칭하는 사랑과 내가 칭하는 사랑이 다르고, 그렇게 세계에 서로 다른 여러 사랑들이 있겠지요. 그 모든 사랑의 발화가 시작되기 전, 그 직전을 휩싸는 감각은 어쩔 수 없이 사건이고, 현상입니다. 현상에는 변수가 많고, 그 변수는 개념을 점점 더 모호하게 부풀립니다. 하지만 그 부풀림이 곧 더 다양한 현상을 포용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당신이 말한 테오도르, 알랭드 보통, 조제를 둘러싼 모든 현상을 우리는 동시다발적으로 사랑, 이라고 칭할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사랑이라고요.


저에게 있어 사렁과 사랑이요. 음, 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이미 밝혔듯, 당신이 사랑과 서랑을 구분짓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당신에게 있어 ‘편리하기 때문’이지요. 나에게 도취하는 서랑과 나에게 도취되지 않는 사랑이라. 사실 저에게 편리하게 쓰이는 기준은 아닙니다. 저에게 있어 사랑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기준은, 그 이름으로 감싸기 어려운 행위들을 하나둘 소거해나가는 데 있어요. 그걸 서랑이라고 칭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 이름을 붙이기에도 아까운 것들을 제하는 것이 기준입니다. 사랑이 될 수 없는 것, 사랑이 아닌 것, 사랑인 척 하는 것들을 지워나가는 과정이 곧 나에게 있어 사랑이 어떤 모양이며 빛깔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하나 더, 사랑이라 생각했던 어떤 것이 나를 한 번도 장악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걸 사랑이라 확신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 그리고 그 순간의 주체이자 행위자인 나와 사랑을 감각적으로 깨끗이 분리할 수 있을까요. 사랑도, 술도 취하지 않으면 지금만큼 찾아지는 것들이었을까요. 이것이 나를 장악할 수도, 집어 삼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 아래서 사랑은 흘러갑니다. 취해야만 사랑은 아니지만, 취하지않아야 사랑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저는 나에게 취하지 않는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명명과 명제 아래 자신의 모든 언행을 정당화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저 폭력에 대한 무지이지요.


어떤 가치가 개인에게 자연스레 우선순위로 정립되는 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 듯합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누리고 자랐거나, 그것에서 늘 결핍을 느껴왔거나. 저에게는 사랑이 후자였던 듯 합니다. 가벼운 연애 한 번 해보지 않았던 열 몇살때부터 사랑은 제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어요. 잘 모르면서도 그랬습니다. 가끔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는 하는데요. 자식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랑은 충분히

받았지만, 미디어에서 수없이 말해대는 그 남녀 간의 사랑, 연애, 사랑을 저는 부모에게서 제대로 목도한 기억이 없습니다. 가끔 가다 ‘너희 때문에 저 사람과 산다.’라는 부모의 말들이 더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지요. 사랑의 끝은 결혼 아니면 이별인 것으로 잔뜩 설명해둔 문제집을 겨우 다 풀었는데, 세상에는 논외의 것이 너무도 많았던 거죠. 당장 코 앞에도요.


나를 잃지 않는 사랑은 중요하지요. 아주 중요합니다. 단순히 연애관계로 국한하여 보아도, 둘이 하나로 온전해지는 것을 사랑의 목적으로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깁니다. 서로가 원래의 자리에서 두 발을 딱 붙이고, 각자의 것을 스스로 온전히 지켜갈 수 있는 상태에서 손을 잡고서 서로의 세계를 관람하고 유영하는 것이지요. 한쪽에만 무게가 실리거나, 서로가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상황은 결국 나를 잃어버린 사랑이 됩니다. 물론 그것도 로맨틱이야 하겠지요. 하지만 나를 잃지 않는 사랑을 하여도 그 사랑의 끝에서는 몇 번씩 무너지는데, 나를 온통 잃어버린 사랑이 끝나는 일은 더하겠지요. 다시 나를 구축하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게 제가 지양하는 사랑이고, 당신의 언어로는 서랑일 수 있겠네요. 겪어보았습니다. 그 사랑의 그림자에서 한참을 머물렀어요. 미련이 없어질 때까지 그러고 있었기 때문에 후회도 없고, 오히려 그때 그 사랑을 해서 얻은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그런 사랑을 하면 안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그때 그 사랑을 해서 얻은 것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에는 불안이 없을 수 없을텝니다.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랑도 불가피한 일이라 느끼는데, 혼자 살 수 없다는 말 자체부터 불안감을 내재하고 있지요.


당신이 말하는 본질적인 불안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

제가 이해한 나에게 취하지 않는 사랑이 맞는지도요.

또 당신이 이야기하는 키치는 무엇인가요 ? 그저 가벼운 어떤 밤인가요. 그 가벼운 어떤 하룻밤은 사랑이 아닌가요 ? 답변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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