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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Feb 15. 2022

이 방에서 태어난 것들

나를 뱄던 시절의 엄마는 매일 딸기 한 팩씩을 해치웠다. 


지금도 싼 과일이 아닌데, 그때 네 아빠가 매일 퇴근길에 딸기를 한 팩 씩 사 왔다니까. 그래서 네가 가족 중에 혼자서만 피부가 흰가 봐. 


서로 애정을 표하는 방식이 다른 부부는 내 기억 속에서만 해도 수십 번을 다투었지만, 그 얘기를 할 때만은 엄마의 눈빛이 누그러지는 게 좋았다. 그게 아빠에 대한 애정인지, 나를 뱄던 시절에 대한 애정인지는 몰라도 엄마가 지니고 있는 사랑의 기억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둘째로 태어난 남동생을 붙잡고 책을 읽어줄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했던 것은 엄마의 후회로 남았다. 가끔 엄마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던(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어린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 생각에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었음에도 많은 것을 잘 해냈는데, 못해준 것들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해낸 것들보다 그러지 못한 것들을 더 기억하는 마음에는 어떤 밤들이 녹아있을까 생각했다. 그날,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엄마랑 두 시간 가까이 말을 나누었다.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엄마는 독립을 했다. 그리고 3월이면 엄마는 10년이 훌쩍 넘게 다닌 회사를 퇴사한다. 그동안 번 돈을 기반 삼아 좋아하는 일만 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매달 얼마를 벌든 돈이 없던 나를 못마땅해하던 엄마는 돈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명확한 목표가 생겼고, 그것을 위해 퇴사를 결심하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부러 회사와 먼 곳으로 집을 구해 이사를 간 것이다. 실행력에 놀라기도 했고, 드디어 엄마만의 오롯한 공간이 생겼다는 생각에 괜스레 내 마음이 다 좋았다. 나와 산 지 5년 차인 딸과는 반대로, 태어나 혼자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던 엄마의 자취가 누구보다도 기대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 나 혼자 운용할 수 있는 경험을 지금의 엄마가 하루빨리 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엄마는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가족과 있다 보면 목표가 자꾸만 스러졌는데,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날이 늘어 좋다고 했다. 


반면 요 며칠 동안의 나는 꽤나 하릴없는 날을 보냈다. 어떻게 매일 운동을 하냐며 주변 이들에게 대단하단 소리를 몇 번 들었지만, 사실은 하루치 운동만 겨우 해내며 지낸 것이다. 다른 것은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닌 채로 지나갔다. 글을 썼지만 마무리 짓지 못했고, 책을 읽었지만 이내 잠에 들었으며, 화장대 정리를 하겠다고 주문한 수납함은 이틀 넘게 포장도 뜯지 않고 방 한 구석에 두었다. 어제는 동네를 벗어나 궁금하던 펍에 가서 맥주를 시켜두고 글을 쓸 요량이었지만, 막상 눈을 뜨고 나니 모든 게 귀찮아져 또 집에만 있었다. 마음이 게으르니 몸도 게을러졌고, 운동을 해도 평소보다 효과가 덜했다. 그냥 또 이런 시기가 온 것일까. 아니면 애인의 부재에 생각보다 영향을 받고 있는 걸까. 애인이 없는 첫 주말이기는 했다.


주말마다 만나던 애인과 3주 후에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3번의 주말만 지나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걱정은 말라고 나름 큰소리를 치며 보냈는데, 아무래도 심심하다. 얼굴이야 일주일에 한 번 보았지만, 목소리는 매일같이 들었으니까. 소소한 감정들을 가장 가까이서 나누던 이의 부재는 공허함과 그리움을 반씩 나눠 담은 모양새로, 잊을 만하면 뒤통수를 때리듯 찾아왔다. 아픈 것까지는 아닌데 기분이 좀 나쁜 정도로 누가 한 대씩 치고 가는 것 같았다. 애인을 제외하고는 주변 가까운 이들에게 갖는 애정의 정도와 연락의 빈도가 딱히 비례하지도, 반비례하지도 않는다. 상대가 시시콜콜한 연락을 너무나도 좋아하거나, 내 마음이 쓰이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보통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다 먼저 연락이 오면 반가운 것이고, 나 또한 나대로 그 사람이 생각날 때 무심코 연락하는 쪽이 더 좋은 것이다. 먼저 하는 연락만큼은 목적과 수단이 같을 때 하게 된다. 그래서 그저 그 이와 술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문득 거는 시답잖은 전화가 가장 편하고, 반대로 받는 입장일 때도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좀처럼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쓴다. 직접적인 연락보다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보지는 않는 이런 공간에 이 요즘을 이불 펴듯 훌훌 풀어두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안정을 느끼게끔 하는 것들이 곁에 있을수록 하루를 마뜩하게 지낼 수 있는 힘이 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기록이고 말이라는 것을 갈수록 느낀다. 뭐가 됐든 간에 표현을 해야, 좀 내뱉어야 살겠는 사람인 것이다. 수신인이 명확치 않더라도, 결국에는 비슷한 결을 가진 이들에게 가닿을 만한 곳에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고, 모난 마음은 다듬어서라도 꺼내야 속이 편하고, 좋아하는 이에게는 누가 먼저고 할 것 없이 그렇다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채고 나니 굳이 미루거나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쓴다. 


그 시절 아빠와 엄마의 딸기 루틴(?) 덕에 흰 피부를 갖게 된 것일지는 몰라도, 지금의 나를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오롯이 혼자 지낼 수 있었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태어났다. 마땅히 내 방이라 할 만한 것도 없이 지내다 얻게 된 첫 자취방이 주는 감각과 안정이 얼만큼 커다랬는지 지금쯤 엄마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까. 나는 이곳에서 벌써 오 년째 잠들고 일어나고 있다. 벌이가 좋아지고 나면 볕이 더 잘 드는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도 슬슬 들지만, 여전히 나에게 가장 아늑한 곳이다. 내 여러 사소한 감각들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있어 위로가 된다. 그 덕에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문장이 되고, 결국 글 한 꼬집이 되어 사람들과 만나는 게 아닐까. 전부는 아니더라도, 나와 조금씩은 닮아있는 이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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