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닿아 May 31. 2022

막연병에 걸린 것 같아

서른에게 06

양양으로 촬영을 다녀온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 경주에 다녀왔어. 예상보다 한 주 일찍 이르게 휴가를 다녀온 셈이야. 좋은 일이 여럿 들어온 애인 덕에 가난한 와중에 아낌없는 여행을 하고 왔다. 작년 이맘때쯤 고등학교 친구들과 경주에 갔다가 들렀던 경주월드가 너무 재미있었거든. 그래서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 노래부르던 애인과의 여행에도 끼워 넣었지. 주말이라 붐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줄이 긴 게 거의 없어서 꽤 많이 타고 나왔어. 볕이 강해서 더위에 자주 지쳤던 것 빼고는 다 좋았다. 그런데 더위 때문인지 그냥 유독 정신이 없었는지, 여행 내내 중요한 짐들을 자꾸 잃어버릴 뻔 했어. 스스로가 덤벙대는 걸 알아서, 되려 핸드폰이나 지갑 같은 건 매번 신경쓰느라 잃어버린 적이 거의 없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애인과 있느라 풀어졌는지, 거의 뭐 삼재였어. 경주월드는 둘째날의 일정이었고, 그래서 숙소도 경주월드 근처로 잡았었는데, 내가 첫날 황리단길 쪽 식당에서 미리 빼둔답시고 챙겨온 얇은 에코백에 지갑이랑 파우치랑 넣어 놓고서 그걸 통째로 두고 온거야. 그리고 그걸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았지. 가게는 전화를 안 받지, 경주월드는 가야하지, 날은 덥지. 급한대로 편의점에서 선크림 사다가 바르고 놀다가 결국 해지기 전에 황리단길로 향했어. 놀이공원에 사람 많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지 뭐야.. 다행히 식당에 가방이 있었고, 겸사겸사 들러서 저녁 해결한 갈빗집도 너무 맛있었어서, '오히려 좋아' 외칠 수 있었다 .. 그치만 애인에게는 미안했어. (택시비 눈감아..)


여행이 토-월 일정이었어서, 경주에서 돌아오자마자 출근을 했다. 얼레벌레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애인이 회사분들과 있길래, 인사한다고 들렀다가 이번엔 노트북 든 파우치를 두고 왔네 ..? 어쩐지 짐이 가볍더라고.. ^^ 덕분에 약속 마치고 가려던 애인이 노트북 들고 집에 와줬다 .. 그 사이에 할 수 있는 게 운동 뿐이라, 오랜만에 핸드폰 화면으로 영상 틀어놓고 운동하는데, 맥북 사기 전에 어떻게 핸드폰 보고 그렇게 운동 잘했나 싶더라고. (ㅋ ㅋ) 새로웠어. 


요즘 자꾸 순식간에 막연해지는 감정을 겪어.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 부터 시작해서, 운동과 식단에 게을렀던 태가 몸에 나타나면 어느 세월에 돌아가지, 지금 일하는 곳은 언제까지 다니지, 같이 생 전반에 걸쳐서 막연함이 잔뜩 차올라. 낙천적이고 밝게 살면 반가운 일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알면서도 마음처럼 웃어지지가 않아. 휴가를 한 주 앞당겨 가기 전부터, 한 보름 동안은 거의 매일 술 마실 일이 생겼거든. 갑자기 누가 부르면 또 반가운 마음에 가서 놀고, 친구 집들이도 가고, 맥파이도 관두고(?), 그 와중에 운동하고 식단 조절한다고는 했는데, 유혹에 자주 넘어졌지. 그래서 당연한 결과로, 여행 마지막 밤 즈음 되니까 배가 거의 동산처럼 부푼거야. 여행 내내 먹은 양에 비해 화장실을 못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순간 상태가 너무 심각해보이는 거지. '내가 모델이 맞나' 부터 시작해서.. 기분이 순식간에 착 가라앉았다. 마지막 밤까지 신나게 보내고 싶었을 애인은 내 눈치를 보고, 나는 눈치를 보는 애인 눈치를 보고, 조금 서먹하게 밤을 보냈어. 써놓고 보니까 나 굉장히 진상 같네,,  ( ㅎ ㅎ )


애인과는 서먹한 마음을 잘 풀었지만,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또 다시 막연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예전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내가 생각한대로 이끄는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만 좋아했었는데, 가끔은 어떤 선택 앞에서 몰래 해설지를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친절한 해설을 보고 납득하면서 시키는대로 답을 고르고 흘러가고 싶은 마음도 드는 거지. 근데 그러기엔 너무 내 식대로 많이 흘러온 것 같기도 하네. 후회된다거나 되돌아가고 싶은 건 아닌데, 왜 이런 마음이 자꾸 드는지 원. 빛이 찾아오기 직전의 동굴에 있는게 맞는지, 아니면 길을 잘못 든 건지 헷갈려. 좋아하는 일로 원하는 만큼의 여유로운 생활이 찾아올 기미가 도통 보이질 않아서 그런가?  '아버지 정답을 알려줘' 가사가 이런 마음인가? 아니 근데 송민호 씨는 적성 살려 돈 잘 벌고 있자나.. 뭐 배부른 소리 한다 이런 건 아니구요,, 그냥 조금 부러워서 그래요,, 


그래도 내일 오랜만에 촬영을 가고, 운동이랑 식단도 다시 할 거야. 완전히 적응한 건 아니지만, 근무시간에 이렇게 글 쓸 수 있는 것도 좋아. 금요일에 있을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도 잘 하고 올 수 있을거야.. 그러기 위해 남은 시간 애쓸거야.. 나는 애쓰는 멋쟁이야.. !

매거진의 이전글 한 치 앞도 모르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