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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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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May 26. 2022

한 치 앞도 모르는

서른에게 05

오늘 내 몸이 진갈색 얼룩 같은 점으로 한가득 뒤덮여버린 꿈을 꿨어. 희고 얇은 끈의 민소매를 입고 거울에 팔과 등 이리저리를 비춰보는데, 징그럽기도 하고, 앞으로 모델 일을 어떻게 하나 순간 너무 막연한 거야. 그러다 초연해지면서 이것도 나름 개성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잠에서 깼어. (다른 꿈으로 넘어갔었나?) 등에 새겨진 커다란 얼룩점이 너무 생생해서, 검색창에 해몽을 쳐보니 '신변이나 신분이 변화할 꿈'이래. 일이 잘 풀리나? 싶은 기분 좋은 상상도 잠깐 해보다가, 신변이 변화한다는 말은 또 괜히 무서워서 출근길에 유독 차조심하면서 왔다. (ㅋ ㅋ) 


마냥 편안하고 즐겁기만 하던 주말이 지나고, 뭔가 바쁜 마음으로 주초를 지내고 있어. 짬을 내 오랜만에 처음 보는 작가님과 촬영도 했고, 난데없는 제안도 받고, 지난주 받았던 난데없는 제안을 어떻게든 잘 해내려고도 애썼다. 주변 가까운 이들 중 고등학생 친구들을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네 집에 들러서 피드백과 함께 나름의 팁도 전달받았어. 기억나는 말 중 하나는, '네가 2 정도의 막연함을 가지고 있으면, 듣는 입장에서는 그 막연함이 20처럼 느껴진다.' 이거. 내가 준비하면서 느꼈던 막연함이 너무 잔뜩 묻어 있었나 봐.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될까, 이 아이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등의 걱정이 많았거든. 그래도 친구 덕에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정리하다 돌아왔어. 이번 주 안으로 내용을 마무리 지어야 시연도 여러 번 해볼 텐데 말이야. 벌써 목요일이다. 오늘도 9시부터 깨다 졸다 하다가 결국 11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를 빠져나왔어.


어제는 당일치기로다가 양양에 다녀왔어. 원래는 회식까지 해서 1박 2일 일정이었는데, 하루 줄어서 나는 오히려 좋았다. 함께 일하는 언니와 바다를 향해 열심히 뛰고, 해변을 걷고, 바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 오래도록 물결을 바라보고 그랬어. 날이 따뜻해서 그리 춥지도 않았고, 어려운 난이도의 촬영도 아니었어서 생각보다 즐겁게 일하다가 왔다. 내가 운동은 거의 매일 하지만, 잘 뛰지는 않거든. 러닝을 해보고 싶다가도, 아직까지는 자전거 타는 게 더 재밌고, 걷는 게 더 좋아. 그런데 어제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 컷을 찍을 때 여기는 밟으면 안 되고, 이 동선으로 안 겹치게 달려야 하고, 맨발로 달리는데 바닥에 나뭇가지 조각은 많고... . 이래저래 신경을 써가며 달렸더니 근육이 놀랐나 봐. 어젯밤부터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아프더니 오늘 양쪽으로 번졌다. 종아리 스트레칭 영상을 찾아서 열심히 따라 했는데도 아직 내 종아리가 아닌 것 같아. 이틀은 가려나 싶네-.


변화를 힘겨워하는 것 치고는 삶의 태가 참 자주 빠르게 바뀐다는 걸 새삼 느껴.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든단 생각도 들고. 이번 주에만 두 군데에서 소속 제안을 받았어. 한 곳은 해외 에이전시라는데 뭔가 연락이 오는 방식이나 회사 로고가 조금 못 미더운 마음에 답장을 하다 말았고, 다른 한 곳은 지금 일하기 시작한 곳. 매니지먼트 일도 같이 하고 있는 곳인데, 내가 탐이 난대. 연기에는 관심이 있는지, 그림은 그리는지, 노래는 하는지, 춤은 출 줄 아는지 등에 대답하느라 그날 근무 시간을 거즘 다 보냈어. 그날 퇴근을 하고 집까지 죽 걸어오는데, 그렇게 나에게 무언가를 제안하고 결국에는 흐지부지 되어버린 곳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더라. 어쩌면 나 혼자 하기 어려운 부분에 도움을 받으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건데, 기대하고 싶지가 않은 거야. 며칠 안 본 나를 벌써부터 오래갈 인연인 양 여기는 것이 고맙기도 하면서 못 미덥고 부담스럽더라. 매니지먼트 일을 하신다고는 하지만 소속된 분들이 그림과 글 작가 분들이라, 그곳이 나에게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이 없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아. 그러면서 나는 늘 매력적이고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애쓴다는 게 이중적이라 느껴졌어. 애써서 그런 모습이 되면 뭐해, 제안이 올 때마다 의심하고 숨으면 결국 달라지는 게 없지 않나 싶은 거지. 이런 양날의 마음이 섞여서 속을 헤집을 때면 오래 묵은 피로가 달려드는 기분이야. 유독 피로가 몰리던 날의 컨디션이 마음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지. 대체 나에게는 어떤 일상이 찾아와야 내가 나를 마음 편히 내려둘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계속 살뜰히 챙겨가면서, 유별나게 즐겁고 속 좋게 살고 싶어. 


상반기가 며칠 안 남았다. 하반기에는 좀 더 아침을 살고 싶네. 상반기 동안 해낸 목록에 매일 여섯 시 반에 일어났다는 사람을 보았어. 너무 멋진 거 있지. 오전에 일어나서 바로 운동하는 삶을 다시 살고 싶으면서도 오전에 침대에서 느적거리는 건 왜 이리 달콤한지 몰라. 조금 더 부지런해지자 닿아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많은 거라면 더 애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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