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노일지
나는 많이 참았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갈지 안 알려주고 그냥 마음대로 가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고 나에게 말을 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한 길만 똑바로 가다가도 갑자기 변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너의 마음을 어찌 알겠느냐?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 지혜 있는 이가 모름지기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정말 어느 가요의 노랫말처럼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심오한 뜻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게 된다.
나는 네 마음을 모르는 것은 좋다 이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자동차에는 소위 깜박이라고 불리는 방향지시등이라고 하는 기능이 있다. 네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단지 이 기능은 운전자를 위한 기능이 아니라서 사생활 보호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에 나의 사적인 마음을 남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조금은 네 마음을 나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나는 여러므로 이해심은 넓은 사람이다. 그래서 여러 사정을 알려주면 웬만해서는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예를 들면 잘 가고 있는데 거래처에서 전화가 와서 급하게 차선을 변경해야 한다던가, 아니면 한쪽 손을 다쳐서 한 손으로 밖에 운전대를 조작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 다 이해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데 지금 조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바일 게임을 한다던가, 혹은 어차피 내 갈길 나만 알면 된다고 생각해서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던가, 아니면 다 필요 없고 귀찮아서 이런 이유였다면 나는 정당히 나의 작고 충실한 아동 분노에게 얼마든지 놀이터로 나가서 발버둥 쳐도 되도록 허가할 의향이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나는 그저... 아니 그냥 이런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뿐이다. 내가 너를 대하듯 내 마음도 조금 이해해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