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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이름을...

by 다문 DaaMoon

나의 이름은 다문이다. 다문이라는 이름이 없었을 때는 인간의 종을 가진 그 무엇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내가 이름을 가지면서 더욱 나라는 사람이 명확해졌다. 캐릭터가 생긴 것이다. 이름이 가지는 한정의 힘이다. 이렇듯 불명확한 것이 이름을 가지면 디테일이 생기고 경계가 형성된다.


이런 경계를 알 수 없고 무색무취의 캐릭터가 감정들일 것이다. 감정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이미 붙어 있지만 나와 어떤 감정이 일체가 되었을 때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일 생각을 못한다. 이미 나와 함께 어우러져 나와 나의 감정의 경계를 잃어버린 상태에서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지? 와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감정을 한정하는 방법이 있다. 가만히 이름을 붙여보라. 그것이 사랑이 되었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상관없다. 포스트잇에 이름을 쓰고 붙이는 것 같이 마음속에 네임태그를 써서 붙여보라. 갑자기 감정의 경계가 보이게 될 것이다. 마치 나와 감정은 같은 것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 경계가 나와 감정을 분리시키고 감정과 어우려 나는 누구? 누가 느끼는 것인가?라는 답을 내릴 수 없었던 상태에서 나는 나, 감정이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감정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인간임을 상기시켜준다. 하지만 감정이 넘쳐 감정의 파도에 익사할 때는 가만히 이름을 붙여보자.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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