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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운 Dec 03. 2023

06. 가장 유명한 것 말고, 내가 먹고 싶은 게 뭘까

내가 하고 싶은걸 하자. 그게 나의 결론.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숙소에 도착하자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잠에 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내 옆에 카메라가 있는 걸 봐선 어제의 감동이 잘 기록되었는지 졸음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확인했나 보다.







아 카메라와 휴대폰도 무사히 충전기에 꽂아뒀구나. 다행이다. 오늘의 여행도 무사히 해낼 수 있겠어.


오늘은 프라하를 떠난다.


프라하에 고작 이틀하고 6시간 밖에 머물지 못했음에도 이렇게 사랑에 빠지다니.


일어나자마자 쌍둥이는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기차시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있을 식당을 찾고 있다.

나는 음식에 큰 관심도 없을뿐더러, 보통 내가 찾는 맛집이 성공적인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식당을 찾는 것에 열정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일절 신경 쓰지 않으면 상대방이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성공적인 하루를 위해 쌍둥이가 잠시 씻으러 간 사이 허겁지겁 주변에 있는 맛집을 찾아본다.


그렇게 정한 식당은 숙소와 가까이 위치한 어느 굴라쉬 맛집.


이젠 체크아웃을 하고 이 멋진 숙소에서 나서본다.


나오자마자 질퍽하게 눈들이 밟힌다. 어제는 그렇게 낭만을 외치던 눈들인데 햇살에 녹아 진흙과 섞인 눈들 사이로 캐리어를 끌자니 퍽 난감했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거리상으로 그렇게 멀지 않았으나 이런 거리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힘겹게 식당에 도착했지만 바퀴에 묻은 진흙이 신경 쓰여 식당에 쉽사리 들어가기 힘들어 입구에서 망설였는데, 그럼에도 우리를 반갑게 반겨주는 식당 점원들 덕분에 기분 좋게 식당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메뉴판을 들어 굴라쉬와 스테이크를 시켰고 이곳에서 꼭 디저트도 먹자고 쌍둥이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프라하에 와서 무언가 제대로 먹은 기억이 코젤 맥주펍이 전부였다.


쌍둥이가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며 어제 재즈바에서 자신이 몰래 찍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쌍둥이 앞자리에 앉은 내가 꾸벅꾸벅 고개를 흔들며 졸고 있는 영상이었는데, 괜히 앞 무대에서 연주하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어제의 내 피로감이 너무 잘 담겨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누군가 재즈바에 간다면 '멋진 옷'과 '체력'을 들고 가라고 말해줘야겠다.


이내 테이블에 우리가 시킨 음식들이 올려졌다. 


굴라쉬는 헝가리 음식으로 소고기와 야채 스튜를 조합한 음식이다. 한국에서도 입 짧기로 유명한 내가 새로운 음식을 잘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긴 했지만, 그래도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으로 손꼽히니 수저를 허겁지겁 굴라쉬 쪽으로 가져갔다.








"음... 지금 내가 씹고 있는 게 뭐야?"


감자인지, 빵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무언가가 내 입속에서 씹히고 있었다.


쌍둥이) "몰라? 그냥 먹어. 맛있네."


나) "그럼 나랑 너 스테이크 바꿔 먹을래?"


쌍둥이) "아니, 그건 좀.."


굴라쉬의 맛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스테이크와는 꽤나 비교가 되나 보다.


다행히 얼마 먹지 않은 상황에서 금방 배가 불러 굴라쉬를 모두 먹지 않아도 됐지만 내 인생에 한 번이면 될 그런 경험이었다. 분명 맛이 없진 않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사실은 코젤맥주와 함께였기에 다행이었다)


이내 디저트를 먹기 위해 서버에게 메뉴판을 다시 한번 부탁드렸다. 한국과는 달리 유럽 식당에서는 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며 음식을 먹는 분위기라 우리도 마음 편안히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꿀차와 비엔나커피 한잔 주세요'


이곳에 와서 커피를 먹지, 왜 꿀차를 먹냐 쌍둥이에게 타박을 주던 나였는데,

테이블에 놓인 꿀차가 제법 근사해 보인다.


작은 꿀단지에 직접 꿀을 떠서 차에 적절한 양으로 섞어먹는 모습이었던 터라

꿀이 따뜻한 물에 퍼지는 듯, 마치 우리의 모습도 이곳에 스며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여기에서 가장 유명한 것 말고, 내가 먹고 싶은 게 뭘까

여행지란 이유로 내 취향도 아닌 것들을 유명한 음식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시켰다.

그리고 후회는 그것을 선택한 나의 몫.


다음엔 내가 먹고 싶은 걸 시킬래.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취준 중인 내가 가장 일상에서 절실히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사업 밖에 없으려나?

나에게 그런 용기와 재능이 있는지 두렵다.


차근차근 꾸준히 하면 어딘가에 도달하겠지. 그걸 하면 후회는 없을 것 같아.









행복한 점심식사를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길을 나설 차례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우리의 정신도 함께 날아갈 즈음 주변 샵에서 간단한 쇼핑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분명 기차역인데 실내에 왜 이리 비둘기들이 많은 건지, 한국도 만만치 않지만 비둘기들이 점점 겁이 없어져 대범해진다. 


그 와중에 우리 기차는 1시간째 연착이다. 여름 유럽여행은 시작 전부터 파업문제로 유럽 전역이 골칫덩어리였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서였던지, 운이 좋았던 건지 크게 어려움을 겪은 일이 많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번 겨울여행이 매 순간 아주 문제다.


새벽 비행기가 결항이 돼 경유지에서 낙오가 되지를 않나, 이젠 기차까지 계속 딜레이 시간만 늘어나고 있으니 이 추운 겨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겠지. 

저녁이면 따뜻한 비엔나 숙소에서 이불을 포근히 덮고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 수 있을 거야.




[비엔나행 열차 도착. 탑승 시작]



그 기차에 올라타기 전까진 몰랐다. 이 기차를 내린 후부터의 나의 여행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리라곤.








* 위 사진들은 모두 오운 (@daa_wooon) 개인 권한 저작물이며, 개인/상업적 이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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