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마치고나니 괜히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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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혼자 발리에 간 나. 정신없이 동행을 구해 식사 자리에 합석했다. 즐겁게 저녁을 마치고 길을 걷던 중, 라이브 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홀린 듯 발걸음을 멈췄다. ABBA의 ‘댄싱퀸’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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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베이스 기타의 진동이 온몸에 퍼지고, 환호성이 뒤엉킨다. 함께 앉은 테이블의 외국인들과 '치얼스!'를 외치며 잔을 부딪힌다. 각자의 소리가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소리 덩어리가 되던 밤.
함께한 테이블에는 외국인 2명, 한국인 3명. 이 낯설고도 낯익은 감각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약간 위축된 나를 발견했다. 영어를 이 정도로 못하진 않았는데… 말이 잘 안 나온다.
보다 못한 동행이 말했다.
“너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거야. 그냥 뱉어봐.”
맞다. 나는 못한 게 아니었다. 틀릴까봐, 바보처럼 보일까봐. ‘안 한 것’이었다.
발리에 오자마자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이번엔 영어를 꼭 말로 꺼내보자.'
그 다짐이 무너지기까지, 딱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괜찮아, 아직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남았는걸.
같은 테이블의 외국인들도 그날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벌써 8번째 발리라고 했다. 왜 이렇게 자주 올 수 있었는지 묻자, 그녀는 맥주잔을 들어올리며 웃었다.
“발리는 분위기가 달라요. 이곳에 오면 마음이 놓여요. 자연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랑 맥주 한 잔 나누며 쉴 수 있잖아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내 여행 일정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아직 5일이나 남았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발리,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번 발리는, 그녀가 사랑한 그 ‘발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묵고 있는 숙소가 정말 근사하다며, 다른 외국인과 우리에게 놀러오라고 꼬드겼다. 하지만 다른 동행들은 그녀들의 하이텐션에 다소 지친 눈치였다. 사실 나도, 1차에서 하품을 해버렸던 사람이다.
그런데...
| 엥? 나 왜 3차까지 왔어?
한국인은 쉽게 지치지 않는다. 결국 3차가 끝나고 돌아오는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정글 사이로 뿌려진 별들을 보았다. 스위스에서 본 별처럼, 그날 밤 별들도 콕콕 박혀 떨어질 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 그날의 인연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은 마치 청춘의 한 장면처럼 선명히 남았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이들이 하나의 밤 안에서 웃고 떠들 수 있었던 건, 발리의 힘일까 사람의 힘일까.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나는 발리 덕분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람의 힘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새벽 3시 반]
‘과연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현실과의 타협으로 8시에 눈을 뜨며 마무리됐다. 오늘은 드디어 첫날 실패했던 그 요가원을 가는 날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 요가. 어릴 적 엄마가 요가학원 다닐 때 잠깐 기다리며 본 기억과 요즘 유튜브에서 뜨는 ‘소소한 취미’ 영상을 본 게 전부였다.
조식을 허겁지겁 먹고, 햇살이 따가운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 다시 시내로 향했다. 첫날 실패했던 바로 그 요가원.
The Yoga Barn.
자연 속에서 요가를 즐길 수 있는, 우붓의 상징 같은 공간. 현장 등록만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북적였고, 나는 45분 전 안내에 맞춰 도착했지만 예약 오픈 시간까지는 약간의 기다림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도 괜찮았다. 매표소 앞 빈백에 누워 쉬고, 주변 산책로를 걸으며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드디어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등록을 마친 뒤 받은 건 티켓이 아닌 작은 돌 하나.
“이걸로 입장하시면 돼요.”
작고 둥근 그 돌.
티켓 대신 돌이라니, 너무 발리답고, 너무 요가답고,
작지만 강력한 브랜딩. 그 돌은 입장권이자 이 공간의 철학을 말해주는 상징 같았다. 자연을 닮은 공간이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건, 그 자체로 신뢰를 주는 메시지니까.
계단을 올라 마루바닥이 펼쳐진 공간에 들어서자 5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방석과 베개를 챙기고 자리를 잡자, 옆에 앉은 외국인이 말을 걸었다.
“기대되지 않아?”
“응, 근데 처음이라 좀 긴장돼.”
“긴장할 거 하나도 없어! 여긴 릴렉스 하러 온 곳이잖아.”
그 말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영어로 진행될 수업에 살짝 주눅이 들어 있던 마음이 풀어졌다. 맞다. 잘하려고 온 게 아니라, 느끼려고 온 거니까.
그리고 선생님들이 들어왔다. 한 분은 북을 준비했고, 다른 한 분은 기타를 메고 마이크를 찬 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보세요.
지금,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죠?
그 웃음소리는 우리 안에 있는 ‘어릴 적 나’를 떠오르게 하죠. 그때 우리는 조건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그 말에 심장이 조금 조용해졌다.
“하지만 자라면서 우리는 점점 계산을 하게 돼요.
‘내가 이 정도는 해야 사랑받겠지’, ‘이 정도는 참아야 관계가 유지되겠지’
그렇게 우리는, 나를 조금씩 놓아주기 시작하죠.”
맞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쉽게 다치고, 쉽게 무너졌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에게 약한 나.
“상처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은 쉽게 흘러가요.
나를 향해서도, 타인을 향해서도.
오늘은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다시 그런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에요.”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들이 먼저 떠오를 줄 알았는데, 오늘만큼은 ‘나 스스로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를 바랐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타인에게 기대왔는지를 깨달았다. 만약 내가 내가 다치는 걸 알고 있었다면, 조금은 덜 상처받게 보호해줬어야 했는데. 이번 요가가 끝난 후,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랑 친해지기 위해, 내가 해줘야 할 일은 뭘까?”
이제는, 나와도 친구가 되고 싶었다.
“오늘 요가 어땠어?”
“너무 좋았어. 정말로.”
옆자리 외국인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사람들은 각자 인증샷을 남기며 떠났다. 나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엔 꼭 같이 오자. 너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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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뜨거운 햇살 아래, 우붓의 로컬 마트로 향했다. 망고스틴을 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3분 만에 더위에 패배하고 오토바이를 불렀다.
Delta Dewata Supermarket.
Coco Supermarket보다 더 로컬 느낌이 가득한 마트였다. 하지만, 충격.
“망고스틴 철 지나서 지금은 없어.”
내가 발리에서 꼭 먹고 싶었던 과일인데!
눈물을 머금고, 대신 용과를 샀다. (사실 용과는 ‘무맛의 과일’ 이미지였지만, 발리에선 다르다는 말을 듣고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혹시 컷팅 서비스 있나요?”
“없다. 그냥 잘린 거 사라.”
쿨하다.
정글 숲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곤
브이로그를 찍기 위해 쇼핑한 것들을 펼쳐놓았다.
❶ 망고스틴 대신 망고스틴 주스... 그런데 리치 맛?!
❷ 내가 좋아하는 팝핑캔디. 혼자 있으니 불량식품도 눈치 안 보고!
❸ 맥주, 그리고 평소 잘 먹지 않는 감자칩.
오늘 하루,
누구보다 잘 즐기고, 누구보다 잘 쉬었다.
현재 시각은 아직 낮 2시밖에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