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갔다는 해발 2300m의 산 '시내산'
하나님이 직접 적으신 법을 받은 장소로 알려져 있지만,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만든 죄'로 목숨을 잃은 장소 이기도 하다.
우상의 사전적 의미는 '신처럼 숭배하는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인데, 성경에서는 '하나님 이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형상' 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출애굽의 기적들과 만나와 메추라기 등 여러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경험한 그들인데, 왜 우상을 만들었을까?
하나님의 분노를 산 그들의 행동은 제삼자인 우리가 보면, 마냥 어리석게만 보인다. 결국 그들의 그릇된 선택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성경을 삶의 기준이자 지표로 삼는다. 하지만 이를 지키기엔 많은 노력과 고통이 수반된다. 마치 우상과 같이, 세상엔 쾌락을 자극하는 요인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그 요인들을 뿌리치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이다.
진실에 충실한 삶은 상당히 어렵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기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나 자신을 마주한다. 진실한 삶은 고통스러우니까... 여러 변명들을 나열하며, 회피하려고만 했다. 마치 뜨거운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불이 무섭다며 방치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준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주전자가 새까맣게 타는 것처럼 더욱 비극적인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인생은 실수의 연속이다.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나아짐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우선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즉시 회개하며 잘못을 뉘우쳤다면 결말이 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하나님의 분노를 더욱 키운 것은 그들이 죄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시내산 정상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는 모세는 그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러 궁금증이 생긴다.
이집트 국경을 넘으며 바라본 홍해의 모습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홍해의 기적'의 장소이다.
시내산에 올라갈 때는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위험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낙타를 타고 올라갔다.
아쉽게도 당시 카메라의 기술로는 담아낼 수 없었지만, 하늘의 별들이 마치 사막의 모래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의 주제인 시내산의 모습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의 손을 잡고 해발 2300m 정상에서 내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