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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언 Mar 02. 2022

기분이 좋아지기로 했다.

From. COVID-19 pandemic

'당신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2년 동안 나름 잘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으나 오만이었다. 보건소의 양성 통보엔 허탈함이 묻어있었지만, 적어도 도망자의 삶이 끝이라는 후련함도 섞여 있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 주어진 고통은 비교적 얕았다. 약간의 목 따가움과 미각의 상실을 제외하면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7일의 격리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주었는데, 우선 달력에 적힌 주요 일정들은 모조리 취소되었다. 빨간 선으로 이어진 격리 일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는데, 당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에서 무기력함을 느꼈고 불안이 찾아왔다.


마치 인생에 권태기가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상태로 격리기간을 보낸다면, 꽤 오랜 시간을 혼돈으로 잠식되어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아지기로 했다.


가장 먼저 카페를 내 방으로 옮겼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재즈를 틀고 드립백 커피로 커피를 내렸다. 커피 향이 방안 가득 채워질 즈음 책 한 권을 펼쳐 읽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집안일을 시작했다. 세탁기에 있는 옷들을 건조기에 넣고 건조기에 있는 옷들을 정리했다. 빨래 바구니에 있는 옷들은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만약 시야에 싱크대가 들어온다면, 이때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다 발에 무언가 밟힌다 싶으면 다음 할 일은 청소라는 뜻이다. 집안일을 다하면 일종의 보상을 해주는데,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넷플릭스’와 과자 한 봉지다. 영화가 끝나면 노을이 커튼을 타고 내려온다. 이후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면, 필연적으로 잠이 오는데 고민하지 않고 취침에 들어간다. 늦게 일어나면 모를까 새벽에 깰 일은 없다.   


그렇게 보낸 7일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했다. 주어진 환경이 썩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상황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린 가끔 힘든 상황을 마주하면, '시간이 약이다.'라며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안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시간이 주는 약은 약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진은 밖으로 나가 찍을 수가 없었기에 그간 남이 찍어준 나의 모습과 풍경 사진에 글씨를 써보았다.  


오늘도 당신의 작은 창문이 되길 바라며...




제목 : Gloomy Day in Seoul


저 수많은 창문 중 나만의 숨 쉴 구멍은 없었다. 


Q: 지금 당신에게 보이는 창문 너머에는 뭐가 있나요?




제목 : Some Day


그런 날이 있다. 

소설처럼 운수 좋은 날.

기분 좋게 일어나서 양성 판정을 받은 나처럼...


Q: 완벽한 하루의 끝이 악몽으로 뒤덮였던 경험이 있나요?




제목 : Man in Black


지독한 외로움이 때로는 위로를 주기도 한다.


Q: 당신은 외로움이 도움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제목 : City Boy


부조화에서 조화를 찾아내는 연습


Q: 당신이 선호하는 코디는 무엇인가요? 




제목 : 아버지의 기도


우리의 유대는 주름진 모양이다.


Q: 당신은 아버지의 손을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의 작은 창문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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