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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Sep 10. 2020

홀로살이 8년차... 자취의 장단점?

거리가 먼 지역에 소재하는 학교, 닭장에 가까운 기숙사, 낮은 학점까지... 그렇게 대학생 때 자취러의 길로 들어섰고 어느덧 혼자 산지 8년이나 됐다. 비교적 일찍 자취를 시작한 나에게 친구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혼자 사는 게 더 좋지?" 잠시 고민한 내 대답은.


다시 부모님이랑 살아야 하면 힘들 것 같긴 해.




처음 내 방을 가졌을 때가 기억난다. 중학생 때까지 동생과 한 방에서 복닥복닥 살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그렇게 염원하던 내 방이 생겼다. 동생의 잠꼬대에 시달릴 일도 없고, 1분에 한번씩 울리는 동생의 알람소리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니! 게다가 책상도 침대도 화장대도 온전한 내 것이다. 그 때 얼마나 설레고 좋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취는 내 방이 생기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내 방'은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사생활을 보호 받는 것이지만 '자취'는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유라는 달콤한 말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월세와 관리비, 식비 등 숨만 쉬고 살아도 돈이 드는데다 살면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혼자 감내해야 했다. 


맥주는 정말 아무 잘못이 없다.

혼자 살면서 가장 서러웠던 경험 중 worst

역시 아팠을 때다.


지옥 같은 프로젝트가 끝내고 하루 휴가를 받아서 기분 좋게 맥주 한 잔 마시고 잠에 들었다. 잠든지 몇 시간 뒤에 몸이 이상해서 깼다. 그 동안 프로젝트 진행하느라 계속 긴장돼 있던 몸이 한순간에 풀린 탓인지 밤새 끙끙 앓았다. 


처음에는 겨우 배 아픈건데 너무 호들갑인가 싶어 몇 시간을 꾸욱 참고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새벽에 택시를 불렀다. (가까운 응급실이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었는데 아픈 와중에도 병원비를 걱정했다ㅜ.ㅜ)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고 수액 맞으면서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변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따라 수액을 맞고 있는 모든 환자 곁에는 가족이 함께 있었다.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이 걱정되셔서 계속 전화를 하셨지만 멀리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서러움이 폭발했다. 아프니까 센치해져서 눈물이 찔끔 나고 '아, 이런 게 타향살이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언스플래쉬에서 찾은 사진인데 공감 백배

자취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단 하나,

"오늘 뭐 먹지?"


자취러라면 알 것이다.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혼자 살면서 집밥을 꼬박꼬박 해먹는 것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밖에서 매일 사먹으려면 통장잔고가 남아나질 않는다.


주말엔 적어도 4번은 식사 메뉴 고민을 해야 한다. 요즘처럼 약속이 없는 날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고민으로 보내는 것 같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치우면 저녁은 뭐 먹지? 토요일 저녁을 다 먹고 나면 내일은 또 뭐 먹지?


더욱이 난 요리엔 젬병이다. 하루는 자취방에 오신 부모님이 냉장고를 열어보시곤 "아예 냉장고 전원을 끄고 여기에 옷을 넣으렴"이라며 혀를 끌끌 차셨다. 어지간히 안 해먹고 살긴 했지...  


자취 초반에는 젊음만을 믿고 끼니를 자주 건너 뛰었더니 결국 탈이 왔다. 위염이... (치킨도 못 먹는 큰 병이다.) 지금은 살기 위해 열심히 챙겨 먹고 있는데 늘 쉽지가 않다. 매일 생각하지만 "엄마 밥이 최고시다."


전등 교체는 잘 하는데... 나도 만능이 되고 싶다.

얌전히 산다고 생각하는데도

집 수리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어느 겨울, 수도관이 동파된 적이 있다. 수돗물을 조금 틀고 외출했지만 그 해 겨울이 유달리 추웠던 탓이었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서 수도꼭지에 붓는 등 인터넷에 나오는 모든 대처방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관할지역 수도사업소에 신고전화를 했지만 그날 동파사고가 많아 전화연결 대기시간이 엄청났다. 전전긍긍하다가 하는 수 없이 오피스텔 관리소장님께 SOS를 쳤다.


별 일이 아닌데도 답을 못 찾아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있다. 하루는 구입 한지 얼마 안된 TV가 계속 작동 오류가 났다. 완벽한 문과 재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TV 콘센트를 빼고 다시 꽂는 것 뿐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 방법을 몰라 고민 끝에 수리 기사님을 불렀다. 방문하신 기사님이 요리조리 보시더니 셋업박스가 오래돼 가끔 재부팅을 해줘야 한다며 셋업박스를 껐다 켜셨다. 그러자마자 TV가 나왔고 허무하게 출장비만 몇 만원 냈다. 기사님도 황당해보이셨다.


행복할 것만 같은 퇴근길,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 날도 있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방 안이 온통 깜깜하다. 적막과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자취하기 전에는 상상해 본 적 없는 외로움이 훅-하고 들어올 때가 있다.


현관문을 열면 "어~ 왔니?"라며 맞아주는 부모님도 없고 "언니, 아이스크림 사왔어?"라며 반기는 동생도 없다. 밖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리다가 귀가와 동시에 사회와 단절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무치는 외로움과 함께 공포도 찾아온다. 혼자 있다가 괜히 서늘한 기운을 느낀 날이면 잠이 들때까지 머릿속에 스릴러 영화 한편이 나온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더 심하다. 영화관에서 배우 손현주 주연의 '숨바꼭질'을 보고서 얼마나 무서웠던지... 집에 들어가서 통돌이 세탁기와 침대 밑을 살펴본 적도 있다. 


그래도 혼자 사는 지금이 좋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자취하면 어떠냐는 친구의 질문에 "부모님 집에 다시 들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물론 엄마 밥도 그립고 혼자서 다 해내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혼자 살아서 좋은 점도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당연히 내가 뭘 하든지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취방에서는 내가 BTS고 내가 블랙핑크다!

과메기와 닭발은 가족 중 나만 좋아하는 메뉴다. 자취하면 더이상 다른 가족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고 메뉴를 선정해도 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종류로만 냉동고를 가득 채워도 좋고 오늘 저녁에 퇴근하고서 과메기나 닭발을 주문해도 상관없다. 


잘 때 고무줄 등 몸을 조으는 옷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은 이미 유명하다. 그렇다고 부모님과 함께 있는데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살짝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자취의 장점 중 하나가 속옷만 입고 집안을 돌아다녀도 문제 없다는 것이다. 자주 헐벗은 채로 집에서 뒹굴거리는데(제발 창문은 잘 닫아주세요.) 고향집에 자는 날엔 잠옷을 잘 갖춰야 해서 불편하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춤을 춰도 I don't care~ 즐거운 음악을 듣다 보면 내적댄스가 발휘되는데 자취러는 집에서 마음껏 표출해도 괜찮다. 꿈틀꿈틀 부끄러운 춤사위지만 누구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 괜찮다.(층간소음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 외에도 혼자 살아서 편한 점은 많다. 주말에 늦잠을 실컷 자도 혼날 일이 없고, 집안일도 몰아서 해도 괜찮다. 서울로 놀러 온 고향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밤새 수다를 떨 수도 있다. 또 학교나 회사 위치가 달라지면 비교적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다. 이렇게 자유롭게 살다가 다시 본가로 들어간다? 부모님도 달가워하지 않으실 것 같다. 고향에 오래 머물 계획으로 내려갔더니 불편해하시더라...(흑)




자취는 사람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필연적으로 여러가지를 경험하고 무거운 책임도 느끼게 된다. 나 역시 부모님과 지금까지 살았다면 주거비부터 식사준비, 집 수리 등의 부담을 생각해 본 적 없었을 것이다. 자취를 고민 중이라면 보다 현실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취와 어울리는 단어는 로망이 아닌 '생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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