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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Jan 22. 2021

슬리퍼 신고 어디까지 가봤니

슬세권을 아시나요

영화 <#살아있다>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유아인이 밖을 돌아다니는 좀비를 피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 유아인은 집안에서 열심히 라면을 끓여 먹고 홈트하는 영상도 보고 SNS로 온라인 친구와 대화한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 그렇다. 코로나 팬데믹을 정통으로 맞은 우리의 최근 일상이다. 


요즘처럼 동네맛집을 열심히 찾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매주 홍대, 강남, 서촌 등 맛집을 찾아서 중심가로 갔었는데 이젠 바이러스가 무섭고 사람이 무섭고 '핫'한 맛집까지 무서울 지경이다.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거나 코앞에 있는 밥집에 가는게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양한 인프라가 집 주변에 있는 분들이 부럽다. 집에서 조금만 나오면 편의점, 은행, 세탁소 등 기본 인프라부터 힙한 베이커리 카페, 유명 맛집, 대형 마트가 있는... 그런 곳을 지칭하는 신조어도 있다.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을 만큼 생활편의시설이 가까워 편리한 생활권을 지칭하는 "슬세권"이다. 


집 주변에 모든 게 있으면 좋겠지만 물리적으로 쉽지 않고 내 작고 소중한 예산을 생각하면 더더욱 몇 가지 생활인프라 외에는 포기해야 한다. 지하철역도 가깝고 공원도 가깝고 대형마트도 가깝고 학교도 가까운 곳에 살기에는 예산은 한정적이니까.


그래서 실제 살아보고서 기억 남는 인프라 몇 가지를 추려봤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O세권 이야기.


1인가구에겐 빛과 소금, 편세권

배달 앱이 발달해서 혼자 산다고 예전처럼 컵라면으로 한 끼를 대충 떼우는 일은 적어졌다. 하지만 배달 가능한 최소 금액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고, 또 아무리 1인분만 배달한다고 해도 주문하기 민망할 때도 있다. 결국 편의점으로 가는 발길을 끊을 수 없다. 또 주말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서 짜장라면 하나 끓여 먹고 싶을때 편의점이 멀다면? 그보다 귀찮은 일이 또 있으랴.


예전에 살던 오피스텔에는 편의점이 건물 1층에 위치해 있었다. 편의점을 애용하는 편은 아닌데도 좋았다. 갑자기 생수가 떨어지는 날, 혹은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는 날이 없지 않았으니 말이다. 건물 내에 있다보니 추운 겨울에도 슬리퍼를 신고 가벼운 옷 차림으로 편의점을 가도 무방했다. 역시 1인가구에겐 편세권만큼 훌륭한 입지는 없다.


요즘에 더 절실한, 공세권

이전에 '역세권을 기피하는 1인 여기 있습니다'라는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1인가구에게 지하철역만큼 공원 인프라가 소중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도로 하나만 건너면 연트럴파크가 있는 곳에 살았을때 산책을 많이 했다. 집에 있다가 심심하면 공원길을 걸었으니까.


7평짜리 방이 얼마나 답답한지 뼈 저리게 느끼는 요즘,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는 건 산책 뿐이다. 패딩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KF-94 마스크를 단단히 쓴 채 산책길에 나선다. 지금 사는 집은 2개의 큰 공원 중앙에 위치해 있다. 매우 좋을 것 같지만 그 어느 공원과도 가깝지 않다는 게 현실... 공세권, 절실하다 절실해.


▼▼▼

역세권을 기피하는 1인 여기 있습니다


최대한 갈 일이 없으면 좋은, 병세권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자취를 했었다. 사실 평소에는 그 위치에 집을 구한 걸 후회했다. 시도때도 없이 구급차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까. 애애앵~~~ 하는 소리가 이중창을 뚫고 희미하지만 귓가를 항상 맴돌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구급차가 바쁘게 다니구나.' 싶었다. 게다가 연세대 앞이고 대형병원 앞이라 월세도 높은 편이었다. 이웃들 대부분 연세대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 집을 떠나고서 후회를 한 경험이 있다. 신촌 집에서 이사 나간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새벽에 복통을 일으켰다. 아픈 와중에 야간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아봤는데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은 급하고... 결국 거리가 조금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신촌 집에서는 걸어도 될 거리라 1~2시간 아픈 채로 참지 않았을텐데. 왜 아이가 있는 친구가 평소에 야간진료 가능한 병원 위치를 찾는지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세권

시세권이 뭐냐면 바로 시장+세권, 전통시장이 인접한 생활권이다. 몰세권(대형쇼핑몰 주변), 마세권(대형마트 주변)이 인기라곤 하지만 전통시장만의 매력이 있어서 선호하는 편이다. 


서울에서 전통시장을 찾는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삐까뻔쩍한 중심가를 살짝 벗어나 주거지역 근처로 가면 꽤 쉽게 만날 수 있다. 젊은층에게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망원동의 망원시장, 기름떡볶이로 유명한 서촌 통인시장, 50년 역사의 독립문 영천시장, 강남 의 유일한 재래시장인 영동시장 등... 


그 중에서 가좌역 모래내시장 근처에서 살았을 때가 생각난다. 오래된 시장 주변에 로컬 맛집으로 불리는 곳들이 늘 존재한다. 모래내시장에는 유명한 떡볶이집도 있고 호떡집도 있다. 특히 닭내장집이라는 가게를 좋아해서 자주 갔다. 시세권이라 가능한 비주얼의 맛집이다.


직접 촬영한 모래내시장 대표 맛집!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라 최애 메뉴로 등극함


애정했던 모래내시장을 떠나고 지금은 서울의 모 시장 주변에 거주 중이다. 10분 가량 걸어야 하지만 산책할 겸 걸어가서 식재료들을 사온다. 물론 고수, 레몬 같은 재료는 구하기 어렵긴 하지만 덤이 있다. 하루는 귤을 한 봉지 사러 갔다. 귤 종류가 많았는데 사장님이 하나씩 다 맛을 보여주셨다. "이 귤이 더 맛있더라고. 새댁 잘 먹는구먼. 몇 개 더 챙겨줄게."라며 한 봉지를 샀는데 덤으로 몇 개를 더 주셨다. (새댁은 아니지만..호호 잘 먹었다) 


최근에는 시장 안에 새로운 꼬치 집이 생겨서 시장에서 장 본 후 4000원짜리 닭꼬치 하나를 물고 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번 주말에도 닭꼬치를 먹으러 시장 나들이를 해야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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