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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Jul 23. 2020

역세권을 기피하는 1인 여기 있습니다

5년차 뚜벅이 직장인의 보금자리 조건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지 어언 5년이 됐다. 5년 간 집을 구한 횟수는 3번. 한번 구하면 보통 2년 정도 머무르는 편이라 이사하고서도 항상 후회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포기하게 된다. 내가 포기한 조건은 바로 ‘역세권’이다. 부동산업계에서 4년 넘게 일하면서 ‘역세권’의 장점은 숱하게 외쳤지만 정작 역과의 거리를 신경 쓰지 않게 된 이유가 있다. 


# 역세권 좋은 건 나도 잘 알지만...


처음 서울에 올라와 6호선 상수역에 있는 원룸텔에서 몇 개월 살았다. 원룸텔은 고시원 크기의 이 곳엔 침대, 옷장, 책상 심지어 샤워실과 화장실까지 구비돼 말 그대로 서 있을 공간도 턱 없이 부족했다. 이런 공간이지만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이 하나 있고 상수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월세 50만원을 냈다. 물론 역까지 걸어서 3분이면 갈 수 있는 ‘초역세권’이었지만. 


오래 거주하기엔 무리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다이어트도 안 했는데 원룸텔 사는 동안 역대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취직한 후 방을 구하러 나섰다. 서울 지리도 모르는 상황에서 23살 여자 혼자 집을 구하기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역 주변으로 찾아봤다. 그때 깨달은 진리…

“역 가까이 갈수록 비싸다”


'역세권 가격'으로만 구글링하면 역 주변 집값이 비싸다는 글이 우수수 쏟아진다.


# 뚜벅이 직장인이라면 버스 노선도를!


거의 한달 간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당시 재직 중이던 회사의 선배가 추천해준 동네가 연세대 근방의 연희동이었다. 지하철 역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회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 노선이 있다는 것.


유레카!! 다른 편의시설이 다 있어도 지하철 역이 머니까 비슷한 가격대에서도 더 좋은 방이 있었다. 물론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지하철 역까지 나가야 하거나 1~2번 환승을 해야 했지만 버스 한번 타면 출근시간이 20분 밖에 안 걸린다. 일주일에 10번을 이동하는 거리를 편하게 다닐 수 있는데 가끔 있는 외출시간이 긴 게 전혀 대수롭지 않다. 특히나 놀러 나가는 것이라면!


지하철역 주변보다 방값이 더 싸다는 장점 외에도 버스 노선라인에 있는 곳이 좋은 이유는 더 있다. ‘버스는 출근시간에 많이 막히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서울의 경우 간선버스 등 버스전용차선이 잘 마련돼 있다. 지독한 정체구간 몇 곳을 제외하면 출퇴근 시간에 지각 걱정이 없다.


비율로는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버스 이용객이 지하철에 비해 적다.


또, ‘지옥철’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평일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인파에 밀려 고난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에 반해 버스 이용객은 비교적 적다. 실제로도 버스로 출퇴근할 때 앉아서 이동하는 날이 꽤 많았다. 


#1인 가구에게 특히 추천하는 ‘공세권’


부동산 기사를 읽다 보면 ‘공세권’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공세권(공원+~세권)이란 공원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집을 말하는데 가족 단위로 거주하는 아파트를 홍보할 때 주로 쓰인다. 

하지만 공원은 1인 가구에게 더 필요한 인프라라고 생각한다.

경의선 숲길에서 친구가 찍어준 사진

역세권을 포기하고 얻은 연희동 월셋방…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20분 넘게 걸어야 했지만 연트럴파크(경의선 숲길)가 가까웠다. 전용면적 6평 남짓한 방 한 칸에서 혼자 생활하는 나에게 공원이 가깝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혼자만의 시간이 덜 외로워지고 활동적으로 바뀐다는 것. 늦은 시간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혼자 보내는 주말에도 언제든지 시간이 비면 좋은 산책로에서 가볍게 걸을 수 있다(가만히 벤치에 앉아있으면 동네 강아지들을 모두 볼 수 있다). 베란다가 없는 원룸에 살아서 따뜻한 햇볕이 그립기도 한데 화창한 날에는 혼자 경의선 숲길로 가서 돗자리를 펴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직접 촬영한 연트럴파크 주변에 있는 상점들... 이곳 말고도 맛집들이 정말 많다.


또 서울의 도시공원은 그 자체가 랜드마크라서 주변에 상권이 자연스레 조성된다. 여기에 들어서는 상점들은 20~30대가 좋아할 만한 카페, 식당 등이라 여러모로 편리했다. 그 덕분에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놀러 오는 경우도 많았다.


# 여러분의 필수 거주조건은 무엇인가요?


연희동 오피스텔에 2년 동안 살아본 후, 회사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 노선을 살펴서 집을 알아보거나 주변에 산책하기 좋은 길이 있는지 확인하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나 또한 역세권이 싫은 건 아니다. 서울 비(非)역세권에 살면서 뚜벅이로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는 걸 의미하니까. 그리고 회사 위치 등 역 주변을 필수로 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


분명한 건 모든 편의시설이 가까운 위치에 평수도 넓고 건물도 좋은데다 가격도 저렴한 매물은 찾기 어렵다. (설령 있다고 해도 의심해보시라… 정말 맞다면 당신은 행운아)



방 한 칸 찾는 게 참 힘든 세상에서 최고의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는 동안 덜 후회하기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거주 조건을 우선순위로 정한 다음, 가능한 예산 안에서 방을 구하면 된다. 또 살아보면서 다음 집을 구할 때 우선순위를 업데이트 할 수 있다. 


처음으로 집을 구하는 사람도,
또 다시 월세방을 찾아 나서야 하는 사람도,
1년 뒤에 새로운 방을 구하고 있을 나도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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