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달콤한 유혹, 업계약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요즘,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신축 빌라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특히 신축 빌라는 기존 빌라가 갖고 있던 협소한 주차장과 엘리베이터 부재 등의 문제를 보완해 지어지는 만큼 실수요자들의 거주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빌라는 아파트처럼 분양 정보가 상세히 제공되지 않아 정보 검색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블로그, 카페 등 온라인 게시글이나 전단지, 현수막 등 인쇄물을 통해 한정된 정보만을 습득하는 것이 전부다. 발품을 파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주거 상품인 셈이다.
신축빌라 분양 정보를 보면 ‘실입주금 0원’, ‘실입주금 500만원’, ‘실입주금 1000만원’ 등과 같은 문구가 적힌 매물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말 저 돈이면 신축 빌라에 입주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을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이 말이 과연 사실일지 다방이 확인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0원으로도 신축 빌라 입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불법 행위를 저질러야 한다는 점이다. 저렴한 실입주금의 이면에는 ‘업(up) 계약서’라는 비밀이 숨어 있다.
업 계약서란 실제 거래 금액보다 액수를 부풀려 작성한 계약서를 말한다. 업 계약서를 쓰면 정상 매매가로 계약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 매매가 1억원 빌라를 살 경우 원래대로라면 담보인정비율(LTV) 40%(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를 적용 받아 4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업 계약서를 통해 매매가를 1억2000만원으로 올리면 48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점을 이용해 빌라 건설사업자는 수요자의 자금 사정에 맞춰 계약서 금액을 높이고 실입주금을 조정한다.
◇ 사례로 알아보는 ‘업계약서’의 무서움
신축빌라 분양공고를 보고 상담을 받으러 간 A씨(30대·지방 거주자). 입지도 좋고 평형과 구조까지 마음에 든 A씨는 빌라 매매 계약을 결심한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조금 부족했다.
여윳돈이 2000만원밖에 없던 A씨가 분양 상담사 B씨에게 이를 알리자 B씨는 돈이 부족해도 계약이 가능하게 도와주겠다며 업 계약서를 권했다. 2억원인 빌라 분양가를 계약서에는 3억원으로 기재하자는 것이다. 3억원에 LTV 60%(비규제지역)를 적용하면 1억8000만원의 대출이 가능해 실입주금 2000만원으로도 계약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다소 찝찝한 마음은 있었지만 불법이 아닌 편법이라는 말을 믿고 A씨는 기분 좋게 계약을 진행했고, 대출 심사도 무사히 끝마쳐 꿈에 그리던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A씨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업 계약서 작성 발각시 취득가액의 5% 이하에 해당하는 과태료와 무신고한 납부세액의 최고 40%에 해당하는 가산세 등을 내야 한다. 눈 앞의 이익만 바라보다간 생각지도 못한 새드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업 계약서의 무서움이다.
1. 비과세·감면 규정 적용이 배제되어 양도소득세 부과
* 양도자: 1세대 1주택 비과세, 8년 자경농지에 대한 감면 요건을 충족해도 비과세·감면 배제 후 양도소득세 추징
* 양수자: 양수한 부동산을 향후 양도할 때 비과세·감면 규정 적용 배제를 동일하게 적용해 양도소득세 추징
2. 가산세 부과
* 무(과소)신고가산세: 무(과소)신고한 납부세액의 최고 40%에 해당하는 가산세 부과
* 납부지연가산세: 납부하지 않은 세액 또는 과소납부내역의 무(과소)납부일수당 0.025%에 해당하는 가산세 부과
3. 과태료 부과
* [부동산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취득가액 5% 이하에 해당하는 과태료 부과 처분
※ 분양뿐 아니라 전세계약자도 주의가 필요하다
업 계약서를 통해 신축 빌라를 분양 받고, 그에 버금가는 금액으로 전세 물건을 내놓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세입자들의 각별한 주의도 필요하다. 등기부등본을 통한 근저당권 확인 및 전세가율 체크를 통해 깡통전세를 구분하는 절차는 필수다.
최근에는 전입 당일 소유권 변경을 통해 보증금 먹튀 신종 전세 사기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임대인에 대한 대항력이 전입 다음날부터 인정된다는 점을 악용해 당일에 소유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전세보증금을 가로채는 것이다. 국내 주거시장에서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를 위한 제도적 개혁이 절실해 보인다.
업 계약서는 대출이 아닌 세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쓰기도 한다. 추후 물건을 매도할 때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를 미리 고려해 취득가액을 높인 업 계약서를 씀으로써 향후 시세차익에 대한 세금을 절감시키기 위함이다. 이 부류는 다수가 실수요자보다는 투기 수요로 이뤄져 있다. 업 계약서를 통한 양도소득세 절감은 합리적인 절세가 아닌 부당한 탈세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말자.
▣ TIP. 업계약서 반대, 다운계약서도 있다!
업 계약서와 정반대 개념인 다운 계약서도 있다. 다운 계약서는 실거래액보다 낮은 가격을 적은 거짓 계약서로, 대부분 매도인이 양도소득세를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다. 업 계약서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불법이다.
우리가 흔하게 봤던 신축빌라 ‘실입주금 0원’, 가능은 하지만 불법이기에 절대 피해야 하는 행위다. 위 사례 속 A씨처럼 거짓 계약은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기에 부동산 계약처럼 큰돈이 오가는 거래는 특히나,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