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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Apr 09. 2020

1인 가구, 로망과 현실 사이에서

1인 가구가 꿈꾸는 집, 과연 어떤 곳일까?

지난 14년간의 1인 가구 생활은 주거에 대한 철없는 로망을 산산이 깨부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집에 대한 로망이라... 거기 어떤 게 있었더라? 먼저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독립이나 청춘의 표상으로 그려지는 옥탑방을 얘기해보자. 솔직히 말해 주변에서 옥탑방에 낭만을 가진 1인 가구는 거의 본 적 없다. 예산에 맞는 집을 찾다가 내 동생이 친구와 함께 옥탑방에서 살았던 사례가 있을 뿐이다. 내가 지나가듯 동생에게 말했었다.



“옥탑이라 춥긴 해도 마당 있으니까 좋겠다. 평상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내 말에 동생은 이렇게 응수했다.


“평상? 거기 한 번도 앉아본 적 없어. 바퀴벌레가 얼마나 많다고…”




 # 1인 가구 셰어하우스?


최근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모델로 급부상하고 있는 셰어하우스는 어떠냐고? <남자셋 여자셋>이나 <논스톱> 같은 시트콤에 등장하는 하숙집과 대학 기숙사를 보고 또래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을 키운 1인 가구가 꽤 될 거다. 하지만 2020년을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간절하게 혼자 있고 싶다. 스마트폰으로 밀려오는 톡과 문자와 알림을 꺼버리고, 친구도 가족도 모를 곳으로 은둔하고 싶다. 물론 1인 가구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듯 누구보다 주거의 기능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나 같은 인간조차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로망은 있었다. 무려 지난해까지 소중히 품고 있던 꿈이다. 바로 서울 도심의 한옥집! 다가구 주택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주택의 불편함도 상당하다는 건 안다. 그래도,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었다. 로망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어느 날은 서촌 부동산을 얼쩡거리다가 다른 한옥에 비해 눈에 띄게 저렴하게 나온 한옥 광고를 보고 집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외풍이나 벌레까지도 감안하겠다고 정말로 굳게 마음먹고 뗀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미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화장실과 욕실이 집 밖에 있었던 것이다. 콘크리트 박스 같은 화장실 건물 너머로 옆집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물론 그 집에서도 이 곳이 한 눈에 들어오겠지…


# 1인 가구가 살고 싶은 집


자, 그럼 이쯤에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1인 가구가 살고 싶은 집이라는 화두에 당신은 어떤 곳을 가장 먼저 떠올렸는가? 내 추측이지만 1인 가구인 사람과 1인 가구가 아닌 사람 간에 시각차가 꽤 있을 거라 생각한다. 1인 가구 당사자가 아닌 많은 이들이 앞서 언급한 주거 유형 중 하나쯤 떠올리지 않았을까? 


힙 플레이스에 위치한 분위기 넘치는 옥탑이나 화기애애한 셰어하우스, 조금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복층 오피스텔이나 풀옵션 원룸 정도? 아, 나는 어떠냐고? 지난 14년 간 기숙사부터 고시원, 하숙집, 룸셰어, 다가구 등 1인 가구가 살 수 있는 거의 모든 주거 타입을 경험한 나에게, 지금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주거 형태는 ‘20평대 아파트’다.


#거주란 생존, 생활의 문제 


독립하기 위해 살림을 장만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한 사람에게 필요한 살림과 두 사람이 필요한 살림의 규모는 실상 거의 다르지 않다. 혼자 살아도 밥통이 하나, 둘이나 셋이 살아도 밥통이 하나 필요하다. 같이 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 이불 개수나 숟가락 개수 정도를 늘리면 될 것이다. 반대로 혼자라고 해서 생략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나는 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인 가구라고 해서 특별히 색다른 ‘맞춤형 집’이 필요한 게 아니다. 1인 가구이기 때문에 방이 하나만 있으면 장땡인 게 아니다. 1인 가구는 틀림없이, 반드시 외로울 거라며 같이 살 룸메이트를 붙여줄 필요도 없다.

과거엔 1인 가구가 학업이나 직장생활 때문에 임시로 거쳐가는 한 단계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더욱 다양한 연령과 취향, 소득의 사람들이 1인 가구로 살아간다. 이들에게 집이란 잠시 거쳐가는 장소가 아닌 보금자리다. 2~3인 가구와 똑같이 말이다. 그래서 이따금, 슬몃 화가 난다. 1인 가구의 집에 자꾸만 ‘낭만’이나 ‘스타일’ 같은 단어를 붙이는 게. 내게 거주는 일단 생존이고 생활이니까. 이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말이다.


나는 내 희망대로 20평 초반대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렇다, 성냥갑. 대한민국의 스카이라인을 망치고 있다는 그 놈의 아파트. 힙하지도, 서정적(?)이지도 않다. 산기슭에 위치한 낡은 이곳으로 이사하는데도 없던 영혼까지 끌어 모아 빚을 내야했다. 어떤 1인 가구에겐 이곳이 꿈의 보금자린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현재의 집은 지금껏 살았던 모든 집 중에 가장 안전하고 쾌적하다. 물론 내가 우리집을 어떻게 여기든 우리집에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놀라며 말한다. 


“혼자 살기에 너무 넓지 않아?” 

“혼자 사는데 굳이 무리해서 아파트에 살 필요가 있어?” 


그러면 나는 자동응답기처럼 되풀이한다. 


“네. 너무 넓지 않고 딱 적당합니다. 아주 놀랄만큼요.” 

“무리했죠. 엄청난 무리. 대출 이자에 허리가 휘네요. 근데 굳이 아파트가 아니라면 저는, 혼자는 어디 사는게 정답이에요?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제발 얘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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