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아주 흔하게 금수저, 은수저 그리고 흙수저라는 말로 사람을 나누고 평가한답니다.
그 말에 어떤 인간은 스스로 작아지기도, 또 어떤 인간은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말이에요.
금으로 지어지는 인간은, 그리고 은으로 지어지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데,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 그러니까 결국 본질이 아닌 것들이 마치 자신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하게 해요.
저는 그 단어들이 불편하고,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껴요.
당신도 나도, 모든 인간은 흙에서 온,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니까요.
인간은 참 보여지는 것에 자유할 수가 없는 존재임을 느껴요.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것일 텐데 말이에요.
중요한 건 언제나 무언가에 가리어진 것 같아요.
그걸 뚫고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본질이 아닌 것에 온 신경을 다 빼앗겨버리는 참 작고 작은 존재.
그게 바로 저예요.
그저 금그릇이 되길, 은그릇이 되기를 꿈꾸었을 때도 있어요. 그게 좋아 보이고 빛나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릇이 아닌, 그 안에 담긴 것이, 담겨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세상을 바라볼 때면, 정말이지 사랑할 수 없을 때가 참 많아요. 작고 좁은 저의 마음의 크기 때문인지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저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들을 만날 때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아도 저의 존재를 이루는 마음과 생각 속에서는 사랑하지 못함의 언어들이 가득 차올라 끝없이 넘실댑니다.
참, 고작 흙 한 덩이가 왜 이리 빚어지기 싫다고 이리 버티고 저리 버티는지…
좁고 작은 감옥 방 한켠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겠다는, 별처럼 빛나는 젊은 시인의 커다란 마음을 자주 생각합니다.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수백 가지이지만,
사랑하지 않고, 혹은 사랑하지 못하고 끝내 버티는 굳은 내 마음이 언제나 더 슬프게 느껴져서,
사랑밖에는 내가 빚어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래서 버티고 버티다 결국은 나에게 주어진 길에 사랑을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언제나 그렇게 걷고 싶어요.
그것은 누군가를 위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나를 위한 거더군요.
언젠가 human being이란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러다 인간이라는 단어가 human = 흙에서 온 존재, 라틴어 humus, ‘땅’에서 유래되었다는 걸 보게 되었죠.
모두가 흙에서부터 시작되었기에 무언가로 빚어져가는 과정이 삶인 것 같아요.
흙은 자기 스스로 빚어질 수 없는 존재일 테니, 빚어져가는 거겠죠.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모든 순간들은 결국 나를 빚어내기 위한 어떤 것이지 않을까요?
작고 좁은 나의 그릇을 조금 더 크고 깊게 만들기 위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그저 흙 한 줌에서 시작되었지만 생명의 숨이 불어넣어 져, 지금 이 순간 존재하며 무언가를 향해 빚어져가고 무언가를 담아내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
그게 바로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요.
겸손함이란, 그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닌, 내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항상 기억하려는 태도인 것 같아요.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누구와 함께이지 않든, 무엇을 하든, 지쳐 무엇을 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그저 그때에 맞게 빚어져가는 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기왕 빚어질 거, 가장 깨끗하고 정결히 빚어져가봐요 우리. 금처럼 은처럼 빛나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당신이라는 흙으로 빚어진 그릇 안에 담길 유일하고 고유한 것을 보며, 당신의 빛깔대로 빛나는 존재를 분명 제가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당신도 저를 알아볼 수 있게, 작은 저의 세상에서 귀한 것을 담아내며 살고 있을게요.
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