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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Nov 25. 2015

어둠과 빛, 그리고 바람길

자연의 지혜를 배우는 일


(3.21 골방에 창문내기 )


흙냄새 폴폴 나는 골방의 처음 모습.


  100년이 된 안채에는 밝은 대낮에 들여다봐도 캄캄한 암흑같던 방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 방을 '골방'이라고 불렀는데, 실제로 그 방이 풍기는 느낌은 딱 골방이었다. 예전에는 불을 떼는 곳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 그런지, 뭐 이렇다 할 창도 하나 나있지 않고, 아주 작은 유리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이 전부였다. 그 작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한 낮에도 방을 들여다 보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거실이나 다른 방들 처럼 벽지가 발라진 상태도 아니었고, 돌벽에 흙이 발라진 것이 전부였다. 천정도 마찬가지로 대들보와 서까래가 전부 노출된 상태였는데, 아마 이 집의 아주 처음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J와 나는 처음에, 이 방에 창을 따로 내지 않고, 이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약간 어둑하지만 아늑하고 편히 쉴 있는 동굴 같은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물론 햇빛이 필요하지만, 너무 밝은 곳보다 약간은 어두운 공간에서 마음이 더 놓이고, 편히 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하얗고, 딱딱 각진 네모난 공간보다는 약간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약간 어지러진 공간에서 오히려 편하게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집안 곳곳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있어야 환기가 잘 되기 때문에, 이 흙냄새 가득한 골방에 작은 창을 하나 내기로 했다. 







  예전에 콘크리트 벽에는 그라인더를 이용해 구멍을 내 본 경험이 있다지만, 흙돌벽에는 도대체 어떻게 창구멍을 낸다는 건지 나는 무지 걱정스러웠다. J는 다짜고짜 정과 망치를 집어 들었고, 흙과 돌로 세워진 벽에 창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저러다 집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J는 꽤나 자신 있어 보였고 그래서 나는 그냥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무게를 많이 받지 않는 돌들을 골라 조심스레 하나씩 빼내면서 조금씩 구멍을 넓혀나갔다. 그렇게 몇 개의 크고 작은 돌덩이들을 빼내니 창구멍 사이로 바깥쪽에서 벽을 타고 올가던 담쟁이넝쿨이모습을 보이고,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집 공사를 할 수록 돌이 참 많이 생겼는데, 그건 마치 삼다도인 제주의 신비처럼 느껴졌다. 


흙벽을 타고 올라가던 담쟁이넝쿨들이 창구멍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정도 크기의 구멍을 내고, 창틀을 설치할 구조를 만들어 고정시켰다. 방부목을 이용해 수평을 봐가면서 고정을 시키고, 나머지 부분은 다시 흙과 돌로 메꿔준다. 그리고 원래 있던 작은 유리창도 메꿨다. 구멍을 내면서 나온 흙은 아주 찰진 황토였는데, 이 황토를 다시 반죽해서 흙벽 곳곳에 갈라진 부분에 구석구석 발라주었다. 집에서 나온 자연재료를 그대로 다시 사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연은 참 강하고도 신비로운 것 같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재료가 100년의 세월을 지내고도 태초의 그 상태로 존재할 수 있을까.

실제로 J와 나는 100년이 된 이 오래된 집을 고치면서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건축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 경험을 계기로 많은 관심이 생겨서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자연이 주는 재료만큼 견고하고 인체에 무해하며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골방에 창구멍 내기가 완성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큰 크기의 창이 아니어서 빛이 과하게 들어오지도 않고, 창이 난 쪽이 북향이라 사실 많은 빛이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창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한 낮에도 다른 빛 없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작은 골방이 이제 다른 빛 없이도 환히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문과 창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길이 열려 환기도 문제 없게 되었다.

 오늘 날 우리들이 우후죽순 지어 올리는 신축건물들은 보통 냉난방에 의존하는 형태의 집들이 대다수이다. 실제로 오늘 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틀고, 조금만 추워도 난방을 하면서 한 겨울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생활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내가 몇 해 전 여름에 엄마와 함께 전주 여행을 갔을 때,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런데 에어컨 없이 하나도 덥지 않았고, 오히려 시원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는데, 그건 바로 집 안에 바람길이 있기 때문이었다는 걸 공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옆에서 J의 말을 주워 들어보니 한옥에 유독 문과 창문이 많은 것이 바로 공기가 자연스럽게 흐르게 만들기 위함인데, 그래서 제대로 된 한옥에 가면 한 여름에도 시원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청마루 등의 다른 이유들도 있다.) 창을 좋은 위치에 잘 내어 바람이 잘 통하게끔 바람길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당장에는 편리하고 좋다고 느껴질지도 모르나 궁극적으로 자연을 해치고, 결국 인간에게도 피해로 돌아오는 각종 냉난방기에 의존하는 것보다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자연의 힘을 빌려 지혜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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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서쪽 조용한 마을 모슬포에 '민박 맨도롱또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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