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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Dec 10. 2015

마침내 비가 그쳤다.

'맨도롱또똣'은 따뜻하다는 느낌의 제주말이기 때문에-

(3.28~4.2 보일러 기초 작업)

바닥을 10cm 정도 낮추기 위해 하루 3만원에 '뿌레카'를 빌려와 바닥을 부수었다.


우리가 바보였다.

  집 공사를 시작할 때, 창고 한 편에 놓여 있는 보일러 몸통을 보고는 당연히 집 전체에 보일러가 깔려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육지에 살면서 겨울이면 집안 곳곳 뜨끈뜨끈하게 돌아가는 보일러에 익숙해져 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고, 삶은 녹록지 않다. 우리의 사서 고생도 마찬가지였다. 대체로 옛날에 지어진 집들은 보일러가 깔려있지 않은 집이 대부분이고, 이후에 깔았다고 하더라도 주로 생활하는 안방에만 깔려있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 날 문득, 여러 방들과 거실의 바닥 높이가 서로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옆집 할망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 집엔 나 자는 방에만 보일러 깔아놨어~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안채도 큰 방만 유독 바닥 높이가 높은 것이 아닌가? 맞아. 그제야 설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이  새것처럼 보이는 보일러가 눈에 들어왔다. 확인해보니, 그 보일러는 안채의 큰 방과 붙어있는 창고방에만 깔려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겨울엔.. 손님이 별로 많지 않지 않을까?' , '한 명이 오더라도 춥게 재울 수는 없잖아..', '대신 거실에 화목난로를 두면 따뜻하지 않을까?', '방문을 닫으면 바닥은 정말 차가울 거야..', '전기장판을 쓰면 어떨까? 우리도 전기장판 하나로 추운 겨울을 보냈잖아..' 수도 없이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엔 '맨도롱또똣'이라고 지어놓은 이름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누구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따뜻한'공간을 만들자고 했었다. 그래서 이름도 따듯하다는 느낌의 제주말인 '맨도롱또똣'으로 지은 것이었다. (.. 이후에 같은 이름의 드라마가 나올 거라는 기사를 보고 놀랐지만) 아무튼 처음에 만들고자 했던 공간을 떠올리니, 도저히 보일러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또 다른 사서 고생이 시작되었다. 






미장이 되어있지 않던 골방의 바닥도 삽을 이용해 퍼내었다. 흙과 돌이 어마무지 나온다. 

  보일러를 깔기 위해서는 바닥을 10cm 정도 까내고 수평을 맞춰 기초 미장을 한다. 그 후에 비닐과 스티로폼을 깔고 보일러 배관을 깔고, 그 위에 마감 미장을 해야 한다. 길고도 긴, 고생 중의 상고생인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우리의 함만으로는 힘들겠다 싶어서 나무꾼 보일러 아저씨에게 전화로 문의해봤다. 그런데 보일러관을 까는데만 140만 원이라고 했다. 아... 140이라니, 너무 비싸다. 그래서 이번에도 사서 고생하기로 했다.

 그깟 보일러! 직접 해보지 뭐!!




 골방바닥을 파면서 나온 돌들이 작은 산처럼 쌓였다. 쌓여있는 모양이 꼭 '지슬'(감자의 제주말)   같다.



 작은방, 큰방, 골방, 물부엌에 이어 거실까지 모두 바닥을 파냈다. J는 뿌레카를 이용해서 미장된 바닥을 깨부수고, 도련님과 나는 열심히 통에 담아서 밖으로 날랐다. 가여운 나의 도련님은  지난번 천정 작업에 이어 보일러 작업까지.. 가장 힘든 일을 할 때마다 와서 고생을 했다. 나는 그 당시 매우 지쳐있었는지  거실 자갈밭에 털썩 주저앉아 손으로 콘크리트 조각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바닥을 다 파낸 후에는, 물 수평을 잡아 눈에 잘 띄는 형광색 즐을 걸어 놓은 후, 퍼낸 바닥의 조각들을 다시 선에 맞춰 채워 넣는 작업을 해야 했다. 나는 왜 애써 퍼낸 바닥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잔뜩 골이 나있었다.(가운데 사진) 그리고는 남는 공간을 석분을 이용해서 형광색 줄(수평)에  맞춰 깔아준다. 앞마당에 쌓인 석분들이 그 당시에는 얼마나 큰 산처럼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산처럼 쌓여 있는 석분을 삽으로 퍼담으며 삽질의 요령을 배워가고 있었다. 석분을 다 깐 후에는, 나는 다시 시멘 반죽을 하고, 도련님은 시멘 반죽을 나르고, J는 그 시멘 반죽을 바닥 석분 위에 부어 기초 미장을 했다. 


물 수평으로 잡아놓은 형광줄에 맞춰 석분을 깐다. 


시멘반죽을 묽게 하여 기초미장을 해준다. (파랑-도련님, 국방-J)





(4.15 보일러 배관 / 4.20 바닥 미장)

바닥마감미장 하는 장인의 발. 바닥에 자국을 최소화하기 위한 넓직한 신발과 꽃무늬 덧신이 인상적이다.


깔끔하게 마무리 된 기초바닥미장의 모습.


 마침내 비가 그쳤다. 


비가 며칠을 내려서 기초 미장이 마르는 데 꽤 오랜 날들이 지났다. 그 당시 J는 영 공사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자꾸 늦어지는 것 같아 조급해하고 있었다. 조급하고, 초조해 한껏 예민해진 J에게 나는 비가 내리는 김에 조금 쉬어가자고, 너무 조급해말라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너무 늦다 채찍질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런 J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도 마음이 좋지 않은 그런 날들이었다. 그리다 마침내 비가 그쳤고, 해가 떴다. 이제 박차를 가하고 앞으로 나아갈 때가 온 것이다. 바닥 미장이 마르고, 보일러 배관을 깔 수 있게 되었다. 이놈의 보일러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얼른 일을 마치고 떨쳐버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우리의 전기 아저씨는 다재 다능하셔서 보일러 배관일도 할 줄 아는 멋진 사람! 이번에도 역시 도움을 받고, J도 열심히 보일러 배관 공부를 해서 보일러 배관을 깔았다. 


아래서부터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아주기 위해 비닐을 가장 먼저 깔아 준다. 


 습기 차단을 위해 비닐을 가장 먼저 깔아주고, 그 위로는 단열을 위해 스티로폼을  빈틈없이 깔아주어야 한다. 예전에는 스티로폼 없이 그냥 바로 보일러 관을 까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게 시공하면 열이 바닥 아래로 많이 빼앗겨 실제로 보일러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요새 스티로폼 대신 열반사 단열재(은박 단열재)를 까는 경우가 많은데, 스티로폼을 까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다고 한다.) 스티로폼 위에는 '와야 매쉬'(와이어매쉬인데 현장에서 '와야 매쉬'라고들 하셔서.. 나도 편하게 와야 매쉬라고  한다.)를 깔아주어야 하는데, 배관을 간격에 맞춰 고정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면 그 위에 비로소 보일러 배관을 깔 수 있다. 


 위와 같이 와이어 매쉬에 작은 철사를 이용해서 배관을 구부려 고정시킨다. 방 곳곳에 보일러 배관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시작하기 전에 계산을 해보고 깔면 좋다. 배관을 모두 깐 후에는 그 위에 마감 미장을 해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직접 하려고 시도했다. 내가 반죽하고 J가 작은 방부터 시작했지만, 마감 미장이라 반듯하게 수평으로 잘 나와야 하는데 영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오롯이 나 혼자서 시멘 반죽을 해서 날라주려니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이미 너무 지쳐있었다. 

작은 방에 마감미장을 하는 J


며칠 후, 어렵게 어렵게 미장공 삼춘을 모셨다. 삼춘은 오래전에 미장일을 하셨지만, 지금은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우리의 부탁으로 도와주러 오신 것이었다. (요즘 제주는 곳곳에 공사가 하도 많아서 미장공을 구하기가 힘들다.) 역시 장인의 손길은 남달랐다. 도와주러 오신 전기 아저씨가 계속 시멘 반죽을 하고, 나는 그 반죽을 통에 퍼 담고, J는 나르고, 미장공 삼춘은 계속 미장을.. 손발이 척척.


미장공 삼춘의 손길

 그렇게 우여곡절 사서 고생 끝에 보일러 설치를 마쳤다. 지나고 보니 길고도 긴, 힘들고도 힘든, 시험의 기간이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J와 나는 모두 지쳐있었고,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고 계속 늦춰져서 예민해져 있었다. 서로 상처 주는 말들을 내뱉고, 다투기도 했었다. 


 마침내 비가 그쳤고, 길고도 길었던 보일러 공사를 마무리 지었고, 
긴장도 풀렸고, 서로의 마음도 풀렸다. 











Instagram : mendolong_hostel

Blog : http://blog.naver.com/dab_eee

제주 남서쪽 조용한 마을 모슬포에 '민박 맨도롱또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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