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비 Nov 21. 2015

고양이 발자국

작은 일들 하나하나에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참 감사하다.


 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천정 흙 보수

(3.4~8 올레길 보수, 바닥 미장, 그리고 땜빵)


 오래된 옛집이다 보니, 여기저기 보수해주어야 할 부분이 많았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은 아무래도 천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돌과 흙으로 지어진 집이다 보니, 그에 맞게 되도록 보수도 흙으로 하기로 했다. 바깥채 공사할 때 흙을 얻어왔던 공사장을 다시 찾아 흙을 또 얻어왔다. 벽이나 천정에 바르기에는 황토가 최고다. 찐득찐득하니 떨어지지 않고 잘 붙어 있는다. 

공사장에서 얻어온 진흙


 바깥채 공사 때는 흙이고 시멘이고 전부 손으로 비벼서 했었는데, 안채 때는 도저히  안 되겠다 하여 믹서 드릴을 하나 장만했다.  이후, 믹서 드릴로 흙이며 시멘 반죽을 하는 일은 내가  도맡아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sns에 올린 내가 믹서 드릴로 반죽하는 사진에 누군가가 "여자 근력으로는 무리일 텐데요."라고 덧글을 남겼고, 거기에 나의 사랑하는 남편 J는  "문제없습니다."라고 다시 덧글을 달았다. 하하 그래, 어깨가 뭉치고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 나중에는 좀 더 큰 믹서 드릴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튼.. 황토에 점착력을 높여주는 매트로스를 섞어서 비벼준 후에 손으로 치덕치덕 발라주면 된다. 작은 부분은 나름 할만한데, 흙이 크게 떨어져나간 부분은 흙을 새로 바를 때마다 가차 없이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럴 땐, 조바심을 내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하는 거다. 발리는 만큼만 발라놓고, 하루 뒤에 그 흙이 굳으면 그 위에 덧바르는 것이다. 그렇게 바르다 보면 구멍을 모두 메꿔줄 수 있다. 


흙이 떨어져 나간 부분에 흙을 새로 발라 보수해준다.
고무장갑을 끼고 천정에 흙을 바르다보면 흙이 여기저기에 떨어지는데 물론 내 머리, 내 얼굴 위에도 떨어진다.




시멘트 미장


 본격적인 미장 작업을 위해서 모래 1루베와 시멘트 10포대를 주문했다. 이 때는 이 정도도 참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후로 우리는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시멘트를 비비게 된다... 안채 창고에 있던 큰 다라이(?)를 매우 유용하게 잘 써먹었다. 시멘트 반죽은 상황에 따라 비율이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은 모래:시멘트를 3:1 비율로 한다. 

믹서드릴로 시멘트반죽을 하는 모습
시멘반죽으로 안채 곳곳 구멍난 곳을 땜빵한다.
안채 올레에 설비공사 후 레미콘 미장했던 부분이 트럭이 들어오면서 주저앉아 새로 미장보수를 했다. 그 김에 맨도롱또똣 글자도 새겨넣었다. 




고양이 발자국


  안채의 옛 주방 공간에도 화장실과 샤워실, 세면실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기초바닥 미장 작업을 했다. 바닥 기초 미장의 경우에는 시멘트 반죽을 아주 묽게 하여서 부어버리면 대략 수평이 맞춰진다. 또한 화장실과 샤워실 바닥은 구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미장을 할 때, 수평자를 이용해서 물이 잘 빠지게끔 구배를 잡아주어야 한다. 

물부엌에 바닥 기초미장을 하는 모습


 안채에는 길고양이들이 많이 드나들고, 따로 입구를 막을 문이 없었으므로 당연하게도 다음 날 미장을 한 바닥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르지 않은 시멘 바닥을 밟고는 당황해했을 녀석들의 표정이 상상이 갔다. 


다음날, 바닥에 선명하게 새겨진 고양이 발자국

 느리지만, 업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 둘의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집을 고쳐나가다 보면 이런 작은 일에도 한참을 관심을 기울인다. J와 나는 이 작은 고양이 발자국을 두고 사진도 찍고, 그 모습도 상상해보고, 웃기도 하면서 천천히 다음 작업을 준비했다. 이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에 젊은 부부 둘이서 바쁘지만 천천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작은 일도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때론 놓치고, 때론 흘려보내는 사소한 일들이 우리 둘에겐 얼마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는지, 하나의 작은 추억이 될 수 있는지. 작은 일들 하나하나에 마음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참 감사하다.








Instagram : mendolong_hostel

Blog : http://blog.naver.com/dab_eee

제주 남서쪽 조용한 마을 모슬포에 '민박 맨도롱또똣'

매거진의 이전글 한 번씩 손이 오갈 때마다 나무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