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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May 13. 2020

내가 번 돈 내가 쓰는데 왜

주는 건 즐겁지만 받는 건 어색한 사람

인터넷 쇼핑몰 주인들이 나를 본다면 쫓아낼 거다. 40만 원짜리도 아니고 4만 원짜리 블라우스를 사면서 옷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134건의 후기를 다 살피고, 더 싼 데는 없는지 들락날락하는 나를 보자면 차라리 안 판다고 하지 않을까. 옷 하나를 사기 위해 열 손가락도 다 못 채우는 모든 친구들에게 이 옷 어떠냐고 묻고는 안 사기가 취미다.


친구들 대통합


사과 겸 변명(구질구질)을 하자면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다. 어딘가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쇼핑을 하지만 결국엔 마음을 닮은 공허한 장바구니를 보며 고개를 젓는다. 그런 나를 위해 소비에 관한 명언이 있다.


"사려는 게 가격 때문이면 사지 말고, 가격 때문에 안 사는 건 사라."


이 말로 인해 초특가 세일에 현혹되는 일은 드물어졌다. 텅 빈 장바구니를 보며 힘들어할 확률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격 때문에 안 사는 걸 사는 과감한 일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들여다본 블라우스를 사지 못하고, 품절이 되고 나면 아쉬운 마음보다 다행인 마음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신중한 요즘 세대들의 소비(일반화할 순 없지만)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뭐 누구나 그렇겠지만 최소 비용 최대 행복을 추구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소비심리에도 반영되었다는 꽤나 그럴듯한 말이 나를 위로했다.


그런데 남들과 다른, 나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품절이 되지 않아서 결국엔 사버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늘 죄책감을 느꼈다. '용돈도 아니고 내가 번 돈 내가 쓰는데 왜'가 늘 마음속에 있었지만, 결국엔 또 습관처럼 죄책감을 느꼈다. 우울한 회색의 마음은 내가 산 아이보리색 블라우스를 물들여 못나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거 왜 샀지.


이러려고 삼 혼자 입고 혼자 놀려고


결국엔 스스로 그 답을 찾았다. 허름한 옷을 몇 년째 입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자면 하늘하늘 여리여리 보들보들 블라우스(온갖 수식어를 붙인 걸 보니 엄청 맘에 들었음)를 입고 싶지 않았다. 엄마 탓을 하지만 결국엔 내 목을 내가 조르고 있는 걸 안다. 엄마 옷을 안 사준 건 아니다. 철에 맞게 여러 옷과 액세서리를 사줘봤지만 엄마는 옷장에 고이 모셔둘 뿐 입지 못했다. 그러면서 왜 비싼 옷 사지 않느냐며 동네 창피하게 소리 지르며 서로에게 화내는 엄마와 나는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는 것까지 지독히 닮았다. 우리는 주는 건 즐거워하면서 받는 건 어색한 이상한 사람들이다.


'내가 번 돈 내가 쓰는데 왜'를 한숨 쉬지 않고, 고개 빳빳이 들고 말할 날이 오기는 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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