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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May 01. 2022

솔직하기 어려운 너에게

그날의 감정 - 실망스러움

솔직하기 어려운 너에게


  안녕, 나는 요즘 너무너무 못난 너야. 오늘은 오랜만에 가장 아끼는 친구를 만난 날이야. 새로 산 청원피스를 입으려다 '그동안 조금 멀어진 것 같으니까' 유치하게 샐쭉이는 마음에 내 마음대로 입고 나갔어. 이상하게도 친구를 보자마자 춤이 덩실덩실 났어. 맛있는 리조또도 먹고,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르는 멋진 카페도 갔어. 상당히 평범한 만남이었지. 친구는 내게 편지 같은 엽서를 건넸어. 사진을 정리하고 친구가 준 엽서를 읽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흐르더라.



  나는 친구를 조금 원망하고 있었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를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서운했거든. 너무 보고 싶었거든. 근데 나는 그걸 말하지 못했어. 나는 감정도 더치페이를 하는 사람이라 네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만큼만 나도 너를 보고 싶어 하고 싶었어. 그런데 너는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며, 너에게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고 말해줬어. 나는  이렇게 마음의 빚이 생겨버렸어. 나는 뒤늦게야 친구를 원망하던 나를 원망하면서 소리 없는 아우성 중이야. 나도 너를  아낀다고. 네가  좋다고.   이렇게 솔직하기가 어려운 걸까?




  얼마 전에 내 남자 친구는 더 멋진 사람이 되었어. 누가 봐주지 않아도 늘 열심히 한 덕에 계획한 일들이 모두 잘 되어가고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 진심을 다해 축하해줘야 하는데 이상하게 또 마음이 샐쭉이는 거야. 나는 기분을 숨기는 데는 영 재주가 없어서 남자 친구한테 들키고 말았지. 괜히 생리 핑계를 댔는데, 남자 친구는 기쁜 일 앞에서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어.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내게 좋은 일이 있을 때 남자 친구가 이런다면 난 헤어지자고 말할 텐데.



  맞아. 배가 아팠어. 나는 아무 노력도 하기 싫은데, 나와 데이트하면서도 일 생각을 하는 남자 친구를 싫어했어. 모두 쓸모없는 일일 거라고 나 스스로를 위안했어. 너와 나만 있다면 빛나는 건 늘 내 몫이라고 생각했거든. 정말 나쁘지. 사랑하는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 나도 나 스스로가 잘 이해되지 않고 못났다고 생각해. 이런 내 못난 생각에도 남자 친구는 여전히 더 크게 반짝일 준비를 해. 나는 사실 너무 게으르고 모든 일을 하기 싫지만, 그래도 네 옆에서는 내가 제일 멋진 사람이고 싶다는 말을 꾸역꾸역 삼키며 쿨하게 축하해주는 척을 했어. 나는 정말 솔직하지 못해.



  

  퇴근 시간이 다 와가던 무렵이었어. 어김없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 얼른 와서 맛있는 걸 시켜달라는 애교에도 나는 힘없이 대답했어. 방금까지 동료들이랑은 깔깔거리며 대화했으면서 말이야. 나는 텅 빈 모니터를 바라보며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이야기했어. 엄마는 알았다며 기다리겠다고 했지. 저녁도 먹지 않고 나를 기다리겠다는 말이 좀 짜증이 났어. 그래도 나는 착한 딸이고 싶으니까 털레털레 집으로 가서는 먹고 싶지 않던 피자를 먹었어.



  조금 답답했어. 엄마는 딸을 사랑하고 그런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고 모두가 바라는 거잖아. 근데 저녁 시간마다 나를 찾는 엄마의 전화가 답답한 내가 정말 미워. 내가 무슨 착한 딸이야. 세상 나쁜 년이지. 나와의 일요일을 기다리는 엄마를 두고 친구와 느끼한 파스타를 먹고 와도, 밖에서 이상한 것만 먹어서 안 되겠다며 갖가지 반찬으로 한 상 가득 차려주는 엄마 옆에서 나는 어쩔 줄 모르겠어. 느끼한 파스타도 나름 괜찮았다고, 멸치볶음도 북엇국도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꼭꼭 씹어 삼켜버렸어. 거짓말이 제일 싫은 엄마 앞에서 나는 매일 거짓말을 하고 말아.




  오래된 친구가 너무 좋아서 자주 보고 싶다는 말도, 남자 친구보다 늘 조금이라도 더 빛나는 여자 친구이고 싶다는 말도, 엄마의 사랑이 좋지만 가끔은 답답하다는 말도 나는 하질 못해. 그냥 나는 다치고 싶지 않아. 아프고 싶지도 않고. 못난 사람이기 싫고 나쁜 사람이기 싫어. 나는 나를 위해서 솔직하지 않았는데. 왜 더 다치고 아픈지. 더 못나지고 나빠지는지 모르겠어. 솔직하기란 정말 어려워.


  너는 어때? 어떻게 하고 싶어?

  조금은 고민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2년 5월 1일

솔직하고 싶어지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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