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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ug 02. 2022

나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싫다

너무나 늦은 우리들의 블루스 반주행 하차 후기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어설픈 제주도 사투리가 들렸다. 찐 제주도민으로서 '엥? 저게 뭐라?' 하며 본 드라마가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그래도 제주도를 배경으로 제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기에 얼핏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봤다. 고두심 님을 제외하고는 전부 엉망이었다. 더는 오글거려 보기가 힘들었다. '육지'사람들은 열광했다. 화려한 라인업 덕이겠지, 낯섦의 설렘 때문이겠지 하며 나는 눈과 귀를 닫았다.


제주도민에게 우블 사투리는 코미디 그 잡채...


  모두가 열광하는 것에 자꾸 힐긋거리게 되는 건 본능인가 싶다. 여기저기서 딱 한 번만 봐보라고 했다. 굳건히 잘 견디던 내가 10년 지기 단짝의 추천에 넘어가버렸다.


  첫 에피소드(한수와 은희)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정말 있을 법한 사정들에 현실인 듯한 배우들의 연기는 나를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늘 밑지는 장사하는 네게 밑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그 대사는 가슴을 후벼 팠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때 끝냈어야 했다. 10화까지 본 지금 나는 몸져누울 지경이다.


안부를 묻게 되는 <우리들의 블루스> 정주행...


  하차하는 이유는 좀 복합적이다. 첫 번째, 모든 에피소드에 반복되는 끊임없는 '애(哀)'다. 내가 즐겨보던 드라마에는 보통 희노애락이 담겨있었다. 그 깊이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감정의 오르락내리락을 즐거워한다. 그런데 내가 느낀 <우리들의 블루스>는 내리락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억지로 '오르락'을 찾는 건 힘들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생각하게 됐다. 이런 삶도 썩 괜찮다는 걸까?


  두 번째, '불행포르노'라는 말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불행포르노란, 캐릭터들에게 비현실적이거나 작위적인 불행을 주입하고 그런 불행을 과다하게 전시하는 작품을 경멸하여 이르는 말이다. 경멸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다한 불행 전시에는 동의한다.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에피소드가 없었다.


  내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감하며 힐링하고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는 그들을 보고 싶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어느 하나 개운치가 않았다. 공감만 될 뿐 힐링되지 않았고, 꾸역꾸역 문제를 삼켜내는 그들의 삶만 있었던 것 같다. (물론 10화까지만 봐서 그럴 수도 있다.) 나를 이용하려고 했던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다시 친구가 되는 것도, 역경을 극복하고 아이를 낳겠다는 고등학생들의 용기도, 본인도 못지않게 아프면서 우울증에 몸부림치는 사람을 끌어안는 것도 모두 목구멍이 탁탁 막혔다.


  마지막으로 내가 과몰입러인 탓을 한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라'는 말이 내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현실과 소망의 결합체라고 생각한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그렇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선택할 때 나의 현실과 소망을 투영할 수 있는 드라마를 선택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의 블루스>는 내 삶 중에서도 상처만 골라내어 끊임없이 공격하면서도 치유는 해주지 않는 못된 녀석인 셈이다. 등장인물들이 나의 소망과는 다르게 치유한다. 그래서 치유를 했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다.


11화를 시작할 수 없었던 길고 긴 이야기가 막을 내립니다


  왜 드라마를 다 보지도 않았으면서 싫은 점만 골라 이야기하느냐고 비난할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 봤으면 나는 이 글을 쓰기 싫을 만큼 너덜너덜해졌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충분히 쥐어짠 수건을 탈수기에 넣고 탈탈 털린 기분, 불행을 곱씹는 기분을 누군가는 피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나는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작품이 없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냥 내겐 버겁다는 말을 A4 한 장이 넘게 썼다. 더불어 반성도 한다. 나의 불행이 당신의 다행이 되어도 된다는 신념을 가진 내 축축한 글들이 이런 느낌일까 싶다가 다시 다짐한다. 슬픈 건 슬픈 거고, 아픈 건 아픈 거다. 슬프고 힘든 일들을 어쭙잖게 괜찮다고 마무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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