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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ug 09. 2022

시장 아줌마 딸은 연예인

디스패치보다 무서운 시장패치

  "니 지금 남자랑 있나! 누고!"


  심장이 철렁했다. 20살 넘은 아가씨가 대낮에 남자와 햄버거를 먹는 게 큰일인가 싶지만 엄마에겐 청천벽력이다. 엄마 말로는 아직 공부를 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몰래 남자를 만나러 가는 건 큰일이다. 내가 미쳤다고 시장 근처에서 만나자고 했지. 서둘러 남자애와 떨어져 걸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아닐 걸? 내 닮은 사람일 걸?"

  "그래? 꼭 니라고 하던데."

  "어우 아니야. 수업 끝나면 전화할게!"


  정말 디스패치에 찍히는 연예인들의 심정을 십 분의 일 정도 이해하게 됐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대체 누가 나를 보고 엄마에게 제보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발 넓은 시장 아줌마의 딸로 사는 건 정말 연예인의 삶이다.


저기서 어멍을 아방으로만 바꾸면 내가 듣던 말!


  나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싫지만 (이전 글: 나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싫다) 이 장면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시장의 자식으로 자란다는 것의 정석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극 중 영주는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한다. 나도 그렇다. 그 이유는 정말 보는 사람마다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을 잘 모르지만 그들은 나를 잘 안다.


  인사 좀 많이 하는 게 뭔 대수냐고 묻는다면 나의 삶을 잠깐 빌려주고 싶다. 시장의 엄마 가게를 가는데 혹은 목욕탕을 가는데 혹은 병원을 가는데 늘 풀메이크업과 좋은 옷차림으로 무장해야 한다. 언행을 조심해야 하고 길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한심한 짓은 절대 금물이다. 이 반대로 한다면 두 가지 말을 동시에 듣게 된다.


  "거지 같은 꼴로 엄마 가게 오지 말라켔지. 고기 내 혼자 사오께. 니는 여기 있어."

  "그따구로 할 거면 시장 오지 마!"


  이것도 저것도 다 싫지만 가장 싫은 건 원하지 않는 관심을 많이 받게 되는 것이다. 학장 시절엔 내가 몇 등을 하는지, 어느 대학에 갈지 궁금해하던 시장 사람들은 이제 내가 무슨 직장에 다니는지, 어떤 남자에게 시집을 갈 건지 궁금해한다.


  물론 그 판도라의 상자는 엄마의 자랑일 것이다. 그런 듯 아닌 듯 무심하게 던지는 엄마의 딸 자랑 스킬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니까. 아마 채소가게 딸랑구는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비싼 선물도 척척 사줄 만큼 좋은 직장에 다니며, 무엇보다 효녀일 테다. 절반은 루머겠지만.




  코로나에게 감사한 게 있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시장에 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는다. 인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쌩하니 지나쳐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그러고 쌩하니 엄마 가게로 들어가면 미션 클리어인 셈이다. 어제도 그런 하루였다.


  그렇지만 나를 떼어놓고 식육점으로 향하는 엄마를 장난스레 몰래 뒤따랐다. 엄마는 거지 같은 꼴로 왜 쫓아오냐 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식육점 아주머니가 날 못 알아보셔서 모자를 살짝 올리고 인사드렸다. 식육점 아주머니는 반가운 손인사와 함께 교정 끝난 걸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셨다. 정말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교정이 끝난 사실을, 아니, 애초에 교정을 한 사실은 어떻게 아신 거야. 엄마는 나를 대신해 답변 폭격을 늘어놨다.


  "야가 교정기 빼고 나니까 얼굴이 홀~쭉해져서~ 어우 고기 좀 얇게 썰어도!"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정말 정말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는데, 어쩐지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기 8만 원어치를 들고 으쌰으쌰 걸어가는 엄마 모습에 얼른 봉지를 뺏어 들고 물었다.


  "엄마, 식육점 아줌마가  교정  어떻게 알아~?"

  "니 철사 바꿀 때마다 이빨 아프다꼬 안 묵고~ 자꾸 살 빠지는 거 같아서 내가 맨날 고기 얇게 썰으라 했거든."


  시장 연예인 데뷔 18년 만에 식육점 아줌마도 내 교정 사실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웃음이 나고 고마운 일인지 새삼 느꼈다. 이게 바로 가끔 엄마가 싫은 내가 더 싫은 이유인 것 같다. (이전 글: 가끔 엄마가 싫은 내가 싫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엄마의 연예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느낀다. ^^


다리를 길게 찍는 법을 알아왔다며 휴대폰을 거꾸로 든 엄마 작품


다보일 소속 직업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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