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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ug 17. 2022

멋들어진 여름휴가 없이도 멋들어지게 쉴 수 있다

쉬는 걸 못하는 나의 달보드레한 여름 일기

  나는 쉬는 걸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쉼'도 멋졌으면 해서, 남들만큼 즐기지 못하며 쉬는 게 싫었다. 원인은 내게 있다. 늘 콤플렉스처럼 여기는 해외여행 무경험자라는 사실과 물놀이는 싫어하면서도 남들이 하는 건 질투 나는 성질에 나의 '쉼'은 보잘것없을 뿐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누런 햇살


  여느 날처럼 지친 퇴근길이었다. 슬슬 시작되는 더위에 기진맥진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풍경에 눈이 뜨였다. 우거진 나무속 맑은 하늘과 오후 무렵의 누런 햇살, 그리고 대각선 구도! 사진을 찍어보는데 문득 육지 사는 친구가 떠올랐다. 이런 일상적인 풍경조차 그 친구에겐 낯섦이리라. 나의 단조로운 '쉼'을 누려보기로 했다.




진짜 한 달 동안 5번은 먹은 것 같음 ^^...


  엄마가 먹재서 먹은 뽕뽕 콩국수다. 이름도 웃기고 식당도 허름한데 금방 간 콩물에 쫄깃한 면은 미미(美味)였다. 문제는 정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었고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거였다. 덕분에 엄마는 양념하지 않은 오이를 싫어하는 편식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만날 오이 두 배로 먹음..ㅎㅎ)


대조되는 이 두 가지...

  아... 정말 아찔한 한 주였다. 전복도 먹고, 소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고, 닭고기도 먹으며 잘 보양했는데 이틀 뒤에 장염에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아래로만 쏟아냈다. 전복,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모두 잘 익혀먹는데 원인은 잘 씻지 않은 상추였다. 사실 살이 빠지길 바랐는데 그대로여서 좀 아쉬웠다. 그냥 체력만 깎였다.



  좋아하는 배롱나무가 피었다. 그리고 장염으로 두문불출하던 내가 교정을 끝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과장하지 않고 정말 치과에 5시간 있었고, 그중 4시간은 불편한 치과의자에 누워있었다. 누워있었다면 편할 것 같지만 나는 다음 날 몸살이 났다. 이 또한 과장하지 않고 정말 골반뼈와 다리 마디마디가 쑤시고 열이 38도까지 났다. 그래도 가지런한 치아를 보자니 자꾸 말 웃음이 났다. 가지런한 이로 부지런히 먹으러 다녔다.


이렇게 웃게 되네요...?


탑텐에서 산 청바지 뽕 뽑았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육지 여행도 못 가는 대신 제주를 즐기기로 했다. 바다로 숲으로 자진해서 떠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함덕 바다는 늘 아름답고, 처음 가본 1박 2일 혼캉스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진 속 저녁식사 빼고... (조식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 차가 없어서 땀을 한 바가지 흘렸지만 그 덕에 피부도 좋아지고 멋진 사진들도 많이 얻었다.


네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달리 나의 최측근님은 저렇게 뽀짝한 것들을 참 좋아한다. 늘 받기만 한 것이 미안해 뽀짝함을 선물했다. 그 모습이 좋아 오래오래 두고 본다. 그와는 달리 화려한 걸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웨딩드레스 스타일을 슥 보여줘 본다. 


역시 나야

  네이버 블로그에서 '주간 일기 챌린지'란 걸 하길래 옳다구나! 하며 참여해본다. 이벤트 운이 없어서 될 리 없을 것 같지만 카톡에서 밝힌 포부처럼 나는 지금 벌써 3주째 매주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덕에...


  자랑하는 겁니다.


뮬란도 봤는뎅... 뭐 생각보다 감명 깊지 않았다...?


  틈틈이 오롯이 고요한 밤 시간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영화를 봤다. 


  <모아나>는 섬을 탈출해 영웅이 된 소녀의 이야기였다. 제주도를 벗어나고 싶었던 과거의 내가 떠오르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한동안 OST를 듣고 부르고 외우고 다녔다. 나도 할 수 있다 ! 그리고 색감이 너무 예쁘니 왕 추천이다.


  <아이필프리티>는 갑자기 스스로가 예뻐 보인 한 여자의 이야기다. 예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옷과 좋아하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 표정을 실험한 걸 본 적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괜찮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은 사람의 표정이 같은 사람임에도 훨 호감이었던 걸 보면 '아임프리티'보다 '아이필프리티'가 중요함을 느낀다. 좋은 메시지가 담겨있고 보는 내내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뮬란>도 봤는데 그다지 인상 깊지는 않았다. (사실 집중하지 않았다.)


저는 세스코입니까?


  포켓몬고도 다시 시작했다. 이걸 계기로 좀 걸어야겠다 했는데 집에서만 잡았다.



 

  사실 아주 일상적이었다. 그저 잘 먹고, 잘 찍고, 잘 자고, 잘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만 해도 편안하게 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쉼'도 마음을 먹어야 하며, 쉬는 순간을 꼭꼭 곱씹으면 마치 쌀밥의 단맛이 난다는 걸. 멋들어진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해도 분명 우리는 멋들어지게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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