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빈곤한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친구가 많았다. 어딜 가든 기죽지 않고 유쾌하게 말했고, 친하지 않은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열심히 원더걸스의 <Tell Me> 춤을 춰보이기도 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의 나는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시작은 아빠의 가출부터였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아빠는 내게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아빠는 나와 놀러 가 주지도 않았고, 고기도 사주지 않았고, 나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틀렸다는 걸 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와 이름이 같은 한 아이가 내게 친한 체를 했다. 그 아이는 몇 년 전의 나처럼 어딜 가든 기죽지 않고 유쾌하게 말하며, 열심히 샤이니 춤을 추던 아이였다. 그 애가 자기 아빠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나는 속이 꽉 막혀 버렸다.
내일도, 모레도 이 아이는 내게 제 아빠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괜히 엄마에게 안겨서 엉엉 울며 그 아이 탓을 했다. 자꾸 아빠 자랑을 하며 가만히 있는 나를 괴롭힌다고. 아빠 없는 거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엄마의 전화를 받은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기 전에 이미 나는 알았다. 그 애의 잘못은 없다고.
중학교에서의 인간관계를 모두 망치며 깨달은 건 빈곤한 마음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커가면서 빈곤한 마음을 숨기는 연습을 했다. 내가 없는 걸 지금의 네가 갖고 있어도 괜찮다, 나도 언젠가 가지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론 아빠 빼고 말이다. 그럼에도 타인의 행복은 매번 나를 시험한다. 나는 안 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왜 이리 쉬운지. 사실은 쉽게 만드느라 아팠을 걸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됐다.
더 자라면서 알았다. 세상에 쉽게만 사는 사람은 없다. 가정이 화목한데 취직에 오래 걸리거나, 돈은 많은데 건강하지 않다는 식이었다. 내가 나의 불행을 글로 써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누군가 나의 불행을 보고 다행을 느낀다면 짠내 나는 내 글도 가치 있겠다 하는 생각.
모두 그렇게 아팠다 괜찮았다 살아가는데 내 마음은 점점 더 빈곤해져 가는 것 같다. 이제는 타인의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다행마저도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주식 투자를 해서 몇천을 번 게 아니라 겨우 원금을 회수했다는 것이나 지독하게 싸웠던 남자 친구와 결국 백년해로하기로 했다는 것에도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빈곤한 마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히 가려지지도, 채워지지도 않는다. 영원히 한 구석을 쓸모없게 비워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을 다 주지 못할까 생각했는데 나는 줄 마음이 없다. 그러니 가엾게도 내가 제일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은 나여야 한다는 것을 쓸쓸하게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