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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Sep 18. 2022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고백

마음이 빈곤한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친구가 많았다. 어딜 가든 기죽지 않고 유쾌하게 말했고, 친하지 않은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열심히 원더걸스의 <Tell Me> 춤을 춰보이기도 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의 나는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시작은 아빠의 가출부터였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아빠는 내게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아빠는 나와 놀러  주지도 않았고, 고기도 사주지 않았고, 나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틀렸다는  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와 이름이 같은 한 아이가 내게 친한 체를 했다. 그 아이는 몇 년 전의 나처럼 어딜 가든 기죽지 않고 유쾌하게 말하며, 열심히 샤이니 춤을 추던 아이였다. 그 애가 자기 아빠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나는 속이 꽉 막혀 버렸다.


  내일도, 모레도 이 아이는 내게 제 아빠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괜히 엄마에게 안겨서 엉엉 울며 그 아이 탓을 했다. 자꾸 아빠 자랑을 하며 가만히 있는 나를 괴롭힌다고. 아빠 없는 거 알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엄마의 전화를 받은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기 전에 이미 나는 알았다. 그 애의 잘못은 없다고.




  중학교에서의 인간관계를 모두 망치며 깨달은 건 빈곤한 마음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커가면서 빈곤한 마음을 숨기는 연습을 했다. 내가 없는 걸 지금의 네가 갖고 있어도 괜찮다, 나도 언젠가 가지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론 아빠 빼고 말이다. 그럼에도 타인의 행복은 매번 나를 시험한다. 나는 안 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왜 이리 쉬운지. 사실은 쉽게 만드느라 아팠을 걸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됐다.


  더 자라면서 알았다. 세상에 쉽게만 사는 사람은 없다. 가정이 화목한데 취직에 오래 걸리거나, 돈은 많은데 건강하지 않다는 식이었다. 내가 나의 불행을 글로 써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누군가 나의 불행을 보고 다행을 느낀다면 짠내 나는 내 글도 가치 있겠다 하는 생각.


  모두 그렇게 아팠다 괜찮았다 살아가는데 내 마음은 점점 더 빈곤해져 가는 것 같다. 이제는 타인의 행복이 아니라 타인의 다행마저도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주식 투자를 해서 몇천을 번 게 아니라 겨우 원금을 회수했다는 것이나 지독하게 싸웠던 남자 친구와 결국 백년해로하기로 했다는 것에도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빈곤한 마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히 가려지지도, 채워지지도 않는다. 영원히 한 구석을 쓸모없게 비워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을 다 주지 못할까 생각했는데 나는 줄 마음이 없다. 그러니 가엾게도 내가 제일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은 나여야 한다는 것을 쓸쓸하게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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