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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Oct 04. 2022

잘하는 건 나를 갈아내는 일이라

그렇다고 못하고 싶다는 건 아닌데

  엄마는 동생에게 용돈을 보냈다고 했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독립하지 못하고 그저 물리적으로만 독립 흉내를 내는 그 애가 참 안쓰러웠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면, 25살의 나는 취직과 동시에 대출을 받았으니까. 표정이 좋지 않았던 내게 엄마가 건넨 말은 "자식에게 대출해달라고 하는 내 마음은 어떻겠냐"였으니까. 그 말 앞에 나는 내 마음을 꼭 닫아두어야만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25살의 동생은 어떻게 밥 한 끼 먹을 돈도 없이 돈을 똑 떨어뜨렸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와장창 내 마음을 다 깨버리고 나면 엄마는 공허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군대에 있을 때 게임에 20만원 넘게 현질했다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가볍게 하는 너도, 네게는 용돈을 보내지만 내게는 모아놓은 비상금이 있으면 달라는 농담을 하는 엄마도, 돈이 아까워서 OTT 서비스도 친구 걸 빌려 쓰는 초라한 나도 참 미웠다.




  며칠 후면 나는 금세 미안한 사람으로 바뀌고 만다. 그냥 조금만 참을 걸. 이번에는 나만 밉다. 이런 일로 직장에서도 뚝딱거리고, 친구관계도 꼭꼭 닫아버리는 내가. 그러면 남자 친구는 행복은 내게서 넘치는 만큼만 남에게 주면 되는 거라고, 넘치지 않는다면 줄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라며 위로했다. 나도 처음엔 다행이라 여겼다. 맞아. 오늘은 한 줌 정도 모자란 걸 거야. 내일 다시 차오르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어째서 내 행복의 잔은 찰랑이기는커녕 점점 메말라가는 것 같은지. 요즘은 내게 남아있는 건 빈 잔뿐인 것 같다.


  불행감은 장마철에 말리는 빨래 같이 아무리 말려도 쿰쿰한 냄새가 난다. 자랑스럽던 적금이 너무나 초라해 부끄럽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고, 지난날의 내가 모두 하등 쓸모없어진다. 그렇게 모든 것을 미워하다 잘하지 않겠다 다짐한다. 잘하려고 최선을 다했던 모든 일 뒤에 내가 가진 것은 아스라진 나밖에 없다. 아등바등 죽을힘을 다해 애썼던 것들은 이제 당연하고 내게는 감사해야 할 일이 되어버리는 것에 어쩐지 자꾸 허탈한 마음만 든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못해도 된다'라는 위로를 건네곤 한다. 나는 그 말을 쉽게 하지 않기로 했다. 못해도 되는 시간이, 자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아픈 말인지 절절히 새겨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해내야만 하는데 그리고 잘 되어가고 있는데 그만하고 싶다. 못하고 싶다는 건 아닌데. 가만히 두어도 잘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잘하는 건 나를 갈아내는 일이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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