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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an 06. 2023

아홉수의 신년 운세

시간이 내 편이라니

  아홉수다. 작년도 만만찮게 힘들었는데. 올해도 좋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신년 운세 보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피하려고 하니 더 눈에 보였다. '2023년 운세가 안 좋은 띠'라든지, '여행 가면 안 되는 사주'라든지. MBTI처럼 일종의 통계학일 뿐인데도 마음 한 구석이 쿰쿰했다. 결국 참다못해 어플로 간단히 봤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요약하자면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였다.


  엄마에게 늘 참고만 하고 의존하지 말라던 나는 그 결과에 좌절하고 말았다. 뭘 해도 안된다면 그냥 진짜 재미없이 참으며 살아야 하나. 걱정에 시름시름 앓던 중에 엄마가 제안을 했다. 


  "이번엔 직접 가서 보는 건 어때?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제법 솔깃했다. 그래. 무료 사주 어플이랑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낫지 않겠나 나를 다독이며 엄마가 알고 지내는 분의 철학관으로 향했다. 철학관에 들어선 순간 걱정했다. 나의 당황한 표정이 사주 할아버지께는 보이지 않았길 빌었다. 건물 안은 곧 이사 갈 것처럼 휑했고 오래된 텔레비전이 지직거렸다. 텔레비전만큼이나 할아버지께서도 지직거리셨다. 이면지에 대충 생년월일시를 끄적이시고 한참 들여다보시며 나는 잘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하셨다.


  결과는 어플과 같았다. 고개를 저으시며 올해는 힘들겠다며 힘내라셨다. 사주는 통계학임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더 묻고 싶은 게 있냐셨다. 얼마나 최악인지를 물어야 하나 고민하다 나 역시 고개를 저었다. 나의 착잡한 표정은 할아버지께 보였던 것 같다. 


  "그래도 갈수록 좋아져. 시간이 네 편이라고 생각하고 살어."


  그 순간은 몰랐다. 그저 멋쩍은 웃음만 짓다 건물을 나서는데 자꾸만 그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꾸 그 말씀을 곱씹었다. 악마도, 신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시간인데 그런 시간이 내 편이라. 마음이 든든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신년 운세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이다. (물론 의무적으로 보라거나 안 보면 후회한다는 식의 협박은 아니다. 그게 다 맞다는 말도 아니고, 사주팔자 만능론자도 아니다.)


  사주를 보면 좋은 이야기도, 나쁜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좋은 이야기는 나에 대한 '응원'이다. 지금처럼 하면 잘될 거니까 킵고잉 하라는 말이다. 나쁜 이야기는 힘든 삶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있다. 사는 게 엉망진창일 때 '아, 내 탓이 아니라 팔자 탓이니 지나갈 테지.' 하면 된다. 간혹 신년 운세에는 고민에 대한 해답이 나올 때도 있다. 그땐 '잘 되면 내 탓, 안 되면 팔자 탓'을 하자. 그냥 내 멋대로 생각하는 수단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시간은 그녀에게 어떤 것도 주지 않았다. 대신 원치 않는 것을 가르쳤다. 내일은 원하는 방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 간절히 원한다 하여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 <완전한 행복>, 정유정


  두 손을 꽉 쥐지 않으면 어디론가 떨어질 것 같던 느낌이 사라졌다.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나는 지금 글을 쓴다. 그리고 마녀가 마법 수프를 만들 듯 내 안을 마구 휘젓고 있다. 시간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내 곁에 서서 응원하는 존재라면, 내일이 원하지 않는 방향에서 오더라도 괜찮다. 적극적으로 힘들어하고 야금야금 내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끝내주게 이겨버리리라 다짐한다. 


ep.

  여유와 즐거움으로 가득한 내게 친구가 애정 어린 말을 건네줬다. 지금 이 의욕이 꺾이더라도 너무 풀 죽지 말라고 말이다. 그럼. 올 한 해는 힘들댔으니 풀도 죽고 의욕도 꺾여도 당연한 거다. 그냥 나는 지금이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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