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아빠가 없었으면

앙금 져 가라앉은 일들 다시 꺼내기 - 중간

by 다보일

그래도 종종 낡은 파란색 트럭으로 학교에 태워다 줬다. 중간에 내가 싫어하는 아줌마가 같이 탔다. 오랜만에 아줌마 봐서 좋지 않냐고 묻는 아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나랑 놀러 갔을 때도 그런 얼굴은 안 보여줬는데. 서운했다. 엄마에게 속상했던 아침 일을 털어놨다. 오늘도 아빠는 집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잠든 줄 알았던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로 욕을 했다.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했다. 그냥 비밀로 할 걸.


방문 틈새로 거실 겸 주방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엄마가 가위를 들고 있다. 아빠는 내가 깬 줄 알았는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 날 것 같았는데, 나가서 말리고 싶었는데, 몸이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았다. 오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게 다 눈으로 나왔다. 소리 내면 엄마 아빠가 나를 향해 덤벼들 것 같아 숨죽여 울었다. 얼른 해가 떴으면 좋겠다. 슬그머니 뒤로 돌아누워 동생 뺨에 손등을 올렸다. 새근새근 깨지 마라 우리 아기.


12살이 됐다. 엄마는 아빠랑 이혼할 거라 했다. 그러라 했다. 엄마가 힘든 건 싫었다. 이혼 기념 파티라도 하는 건지 노래주점에 동네 이모 삼촌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엄마를, 누군가는 아빠를 위로했다. 아빠가 울면서 노래를 부르길래 눈물을 닦아줬는데, 엄마가 싫어했다. 아빠가 술에 취해 길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래도 아빠니까 일으켜줘야지.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분명 들렸을 텐데, 그냥 가버렸다.


다음 해, 동생 생일 며칠 전에 아빠가 없어졌다. 나한테 잘 있으라는 말도 안 했으면서. 그래도 괜찮았다. 여전히 엄마를 사이에 두고 자고, 전학도 가지 않았다. 조금 힘든 건 엄마가 저녁 약속이 있을 때였다. 자다 눈을 떴는데 엄마가 없으면, 그대로 아침이 될까 봐 무서웠다. 머리를 묶어줄 사람도 없고, 아침을 차려줄 사람도 없을까 봐. 그런 날이면 헐레벌떡 맨발로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의 저녁 약속이 줄어들 때쯤 나는 중학교에 갔다. 자기소개서에 아빠에 대한 정보를 적는 칸이 있길래 이름 빼고는 다 모른다고 적었다. 주소도, 연락처도, 사실은 나이도 정말 모르니까. 마치 처음부터 아빠가 없없던 기분이었다. 종례 시간 담임선생님이 무척이나 단호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혼냈다.


"아무리 아빠랑 따로 살아도 다 모른다고 적으면 되니? 그 사람은 돌려줄 테니까 다시 적어와."


누군가는 얼굴이 벌게지고 호흡이 가빴다. 모두 그 누군가를 눈치챈 것만 같아 집에 돌아가자마자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