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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n 10. 2020

아빠는 어디 갔지?

앙금 져 가라앉은 일들 다시 꺼내기 - 처음

동생과 나는 늘 엄마를 사이에 두고 잤다. 나는 거의 엄마 등을 보며 잠들었지만, 하얀 순면 메리야스에서 엄마 냄새가 났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다 못 버티면 나 좀 보라며 있는 힘껏 엄마의 메리야스를 잡아당겼다. 엄마 새끼손가락을 꼭 잡고 있으면서 생각했다. 


'10살 더 먹으면 약지를 잡고, 그다음엔 중지, 그다음엔 검지, 마지막에 엄지를 잡을 거야. 그때까지 엄마랑 잘 거야.'


어린 나의 소원은 현관문 주황 센서등에 종종 힘없이 아스라졌다. 잠결에 엄마를 두어 번 불러도 대답은 없고, 큰 집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메리야스를 너무 잡아당겨서 엄마가 가버렸나 눈물이 그렁일 때쯤 앞집 사는 비누할머니가 찾아왔다.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드는 할머니에게선 썩 좋지 않은 냄새가 났지만, 혼자인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할머니는 나를 다독이며 자꾸 괜찮다는 말만 하셨다. 동생이 또 아팠나 보다. 


할머니는 나를 재운 줄 알고 집에 돌아갔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베란다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이렇게 앉아야 하니까. 6살의 나는 모든 신을 불렀다. 신도 모자라서 별님, 달님, 자고 있을 해님에게도 기도했다. 제발 동생 좀 살려달라고. 단언컨대, 내 일생 그만큼 순수했던 기도는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지독한 약 냄새를 맡으며 응급실에 들어가면, 동생은 온갖 줄을 매달고 색색거리며 자고 있다. 엄마는 얼굴이 해골이 된 채로 딸기 우유를 사다 줬다. 나는 초코우유 좋아하는데. 그래도 신들이 내 기도를 들어준 것 같았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에게 연신 고맙다고 했고, 나를 안고 울었다. 나도 울었다. 이렇게 모두가 힘든데 아빠는 어디 갔지?


병실 소파에 놓여있던 우리 집 이불이 기억난다. 아빠가 가져다준 건데,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빠는 동생도, 나도, 엄마도 봐주지 않았다. 나 좀 놀아주고 가면 안되나. 그래도 평소처럼 우리 셋이 잔다. 엄마는 낮은 침대에, 나는 소파에. 엄마 손을 못 잡고 자는 건 아쉽지만,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단 나았다. 손은 못 잡고 자지만, 엄마 냄새는 약 냄새를 이길 만큼 병실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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