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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l 28. 2020

비관주의자로 살기로 결심했다

당근과 채찍 중에 채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벚꽃 너무 예쁘지."

"어차피 질 건데 뭐. 떨어지면 쓰레기야."


대답하기 껄끄러운 내 반응을 누군가는 외면했고, 누군가는 눈치껏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 속에서도 외로운 게 나였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며 인생의 물결 속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부러웠다. 같은 벚꽃을 바라보면서도 카르페디엠을 외치는 그들 사이에서 영원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서글퍼하는 나는 분홍색에 잘못 튄 검정색 같은 존재였다.




이런 내가 나도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어두운 일 투성이인 인생에서 스스로를 저주하는 마녀로 살아갈 필요가 없는 건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나름 극복해보겠다고, 나도 내 인생의 밝은 구석을 찾아보겠다고 '소소한 즐거움'이라는 책을 샀다.


중반부까지만 해도 최면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맞아. 제주도에 사는 것도, 비바람에 눈치 보지 않고 내 몸 하나 뉘일 집이 있다는 것도 모두 즐겁고 좋은 게 분명하다. 그러나 다들 예상하다시피 이 못난 비관주의가 꼬투리를 잡고 말았다.



나무는 어디론가 도망칠 수도, 자신의 주변 환경을 바꿀 수도 없다. … 사이프러스처럼 묵묵히 제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한다. … 사이프러스는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에서도 기특하게 제 삶을 살아낸다. - 소소한 즐거움 중 <사이프러스 나무>


나는 저 챕터를 읽는 내내 애달팠다. 어쩌면 사이프러스의 의지가 아닐 수도 있다. 무자비한 생존의 본능에서 몸부림치는 고통의 연속을, 타인은 사이프러스의 숭고한 의지라며 박수를 친다. 나의 삶도 누군가는 그렇게 보고 있을까. 구부러진 구석 없이 꼿꼿하게 뻗은 내 가지가 정말 아름다운가.




희망찬 내일을 꿈꾸기엔 인생이 나를 너무 엿 먹였다. 평범한 4인 가족에서 남들이 불쌍하게 보는 한부모가정이 되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싶었던 친구들과는 소식을 듣고 싶지 않은 사이가 되었고, 장학금 싹쓸이 전교 1등은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빈 깡통이 되었다. 그 세월 속에 세상에서 가장 강했던 사람이 나약해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두려움이나 서글픔 따위는 오롯이 나의 몫이기를.


책임감: 물방울이 주변 물방울의 등살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데 익숙해졌다. 강렬한 책임감은 누구 하나 내 말을 들어줄 여유로운 사람은 없다며 나를 채찍질했고, 나는 달릴 수밖에 없었다. 9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도 '이러고 성공하겠다고 말하는 내가 병신이지'라며 자책했다. 지치고 힘들 때 '인생은 혼자'이기에 일기장에 배설하듯 글을 썼다. 몸이든 마음이든 꼭 어딘가 아픈 엄마와의 시간은 유한하다는 생각은 내 삶의 대전제이다.


내 뜻대로 흘러가는 척만 하는 인생은 나다움을 잊기에 충분했다. 나를 떠올릴 때쯤 정신 차리라며 선로를 획 하고 틀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나를 쭉 안쓰럽게 지켜봤을 엄마에게 대뜸 물었다.


"엄마, 어떨 때 나다워?"

"'이런 일쯤이야 별 거 아니지.'라고 말할 때?"


충격적이었다. 모든 일을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찬 모습이 '나'라니. 내가 오래도록 바라던 나의 모습이 이미 '나'라니. 나는 작은 일에도 발발 떨며 잠 못 이루는데. 내가 정말 그런가 싶었다.




돌이켜보니 그런 착각을 할 만도 했다. 재수 없는 자책 덕분에 남들보다 1시간 빨리 일어났고 늘 마지막의 승리를 만끽했다. 슬픔의 순간에 일기장을 찾는 외로운 버릇 덕분에 꽤나 괜찮은 글솜씨를 얻게 됐다. 엄마의 죽음을 늘 눈앞에 두는 애달픔 덕분에 나쁜 일이 있기도 전에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매일 새롭게 깨닫는 중이다. 결과만 보자니 정말 꽤나 괜찮은 '나'였다.


외강내유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자니 늘 속이 적잖이 울렁거린다. 늘 불안의 파도에 출렁였지만 뒤집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덕분에' 잔근육이 생긴 나는 넘어지기는커녕 더 힘차게 노를 저었다.


낙숫물로 댓돌을 뚫어놔도 댓돌을 훔쳐가 버리고, 모래알로 공들여 쌓은 탑을 참 무참히도 짓밟아 뭉개버리는 '삶'이라는 발자국에 나는 검정색 비관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정받고 싶은 나도, 모든 걸 잘하고 싶은 나도, 괜한 감성에 찌질하게 우는 나도 모두 비관으로부터 왔다. 그 덕에 인정받고, 8할은 잘하고, 감성 젖은 글을 쓴다.

제주도는 이렇고, 인생은 혼자입니다


이게 나다. 젠장할.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전까지, 나는 그냥, 비관주의자로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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