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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ug 02. 2020

코로나 19 때문에 거짓말을 못하네

착한 딸 콤플렉스에서 탈출하고 싶어라

"미안, 저녁은 엄마랑 먹어야 할 것 같아."


나는 마마걸이다. 그 덕에 친한 친구들과의 술 약속이 힘들고, 남자 친구와의 노을 데이트가 어렵다. 엄마 혼자 저녁밥을 먹는 상상만 해도 목구멍에 신물이 올라온다. 코끝이 뜨겁고 눈물이 핑 돈다. 셋뿐이던 우리 가족이 동생의 입대로 둘이 되니 집안이 휑하다. 당분간은 이 찡함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을 혼자 해내는 한 사람 아래 두 남매는 알아서들 역할 분담을 했다. 나는 꿈을 포기하고 경제적인 기둥이 되었고, 남동생은 사춘기를 포기하고 감정적인 기둥이 되었다. 엄마는 지붕이 되어 두 기둥을 보호했다. 종종 지붕에 구멍이 뚫린 날이면 두 기둥 중 하나가 젖거나, 두 기둥 모두 다 쪼개지는 모양새였다. 각자의 기둥은 제 역할이 아닌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었다.


견디다 못한 나는 종종 몹쓸 짜증을 내었고, 지붕은 기둥 하나의 부재로 먼지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두 여자는 이불속에서 콧물 소리나 내었다. 다음날 퉁퉁 부은 눈으로 밥은 먹었느냐며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모녀의 화해법이었다. 처음에는 꽤 괜찮은 화해법인 줄 알았으나 어디까지나 고름을 터뜨리기 전까지의 착각이다. 


지친 하루 끝에 침묵을 지키고 싶었던 내게 감정적인 지지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유난히 무거운 날이 있다. 그래도 같은 기둥 역할을 하는 너는 내 마음을 알겠지 하고 털어놓았더니,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거냐며 무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같은 문제가 반복될수록 원인이 '나'인 것 같았다. 자책은 내성발톱 같은 거라 속으로 점점 깊이 파고든다. 더 이상 아프기 싫어서 나는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지기로 했다. 


내 운명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다소 편안하게 느껴졌다. 퇴근 후 한두 시간 정도 휴대폰을 바라보지 않을 것,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자세히 물어볼 것, 사랑스럽게 머리카락과 볼을 어루어만져줄 것. 그거면 됐다. 처음엔 조금 힘들었지만 마음이 편하니 그마저도 괜찮게 느껴졌다. 엄마는 나를 철석같이 믿었고, 그럴수록 나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눅진해졌다. 이 찝찝한 마음을 벗어던질 기회가 필요했다.


착한 딸의 마음 : 백일홍처럼 백일 뒤에 지지 않게 조심하기


처음은 남자 친구였다. 엄마는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처럼 나를 걸어 잠갔다. 남자 동기가 전화만 와도 불같이 화를 냈고, 관심 있는 남자애가 집 앞에 왔을 땐 혼자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찍으셨다. 누르면 도리어 더 멀리 튀어나가는 고무공처럼 나는 결국 거짓말을 택했다. 식당 화장실에 숨어 도서관이라고 말하고, 여고 동창을 만난다며 주말에 데이트를 나갔다. 남자 친구에겐 집에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어리광도 피우고, 떼도 썼다. 나도 싫은 게 있었고, 우는 걸 가만히 지켜봐 주는 사람이 존재했다. 


그랬다. 습한 여름 날씨 같은 집안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거짓말'이었다. 엄마 혼자 덩그러니 며칠을 견디는 동안 내가 여행하는 건 나쁘지만, 내가 출장을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물론 마음은 조금 불편했다. 충동적으로 훌쩍 떠난 여행에서도 엄마 생각에 짠물이 주르륵 흘렀으니 말 다했다. 그래도, 아팠어도 나를 알게 됐다. 전시회를 좋아하는 나도 알았고, 북적이는 장소를 싫어하는 나도 알았다. 


전시회장을 통째로 빌려주세요


마음의 댐 안에 너무 많은 거짓말들이 쌓여서 이걸 한 번에 개방할 수 없게 됐다. 엄마는 싫어하는 거짓말의 호수 안에서 나는 나다움을 찾아 헤엄친다. 내 검은 호수 안에는 동그랗고 예쁜 자갈, 구멍이 숭숭 뚫린 모난 자갈 외에도 아주 각양각색의 자갈이 많았다. 그렇게 매번 새로운 자갈을 주워 방 안에 쌓아둔다. 자갈이 차고 넘치니 용기가 생겼다. 


"엄마, 전시회 가볼래요? 무료래."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꺼낸 자갈이었는데 엄마 눈이 동그래졌다. 휴대폰 게임만 주구장창하는 내게서 나올 말이 아닌 줄 알았나 보다. 전시회장에서 엄마는 나를 따라 가만가만 걸었다. 엄마도 그림을 뚫어져라 볼 줄 안다니. 나의 자갈 하나가 엄마의 자갈도 부른 모양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거짓말을 못한다. 출장이나 외근은 자꾸 없어지고, 여고 동창을 만나기에도 쉽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둘 뿐인 휑한 집안에서 유일했던 탈출구가, 나다움을 찾을 수 있던 비밀 장소가 '거짓말같이' 사라져 버렸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나다움이 거짓말에서 나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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