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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l 23. 2020

작은 것들을 위한 에세이

사소로움이 주는 위안

"오늘은 목요일이네요. 전 목요일을 사랑해요."

"왜?"

"합기도 학원에서 목요일마다 피구를 하거든요!"


피구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권태로운 목요일을 사랑한다는 10살 꼬마의 말에 나는 심쿵해버렸다. 해맑게 웃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자니 이상스럽게도 온통 울긋불긋 거리던 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한 렌터카가 내 옆으로 멈췄다. 신혼부부로 보이던 두 사람이 내게 묻던 것은 여기 번화가가 어디냐는 말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어... 여기가 제일 번화가예요."

"네...?"

"여기에서 벗어나시면 아무것도 없는데...?"


당황과 황당의 핑퐁 릴레이가 끝나고 그 렌터카는 내게 다가오던 속도보다 더 느리게 멀어졌다. 시간이 흘러 조그만 번화가가 창피스럽지 않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여기저기 키다리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수많은 사랑스러운 면 중 하나를 꼽자면 '작고 낮은 것'이다. 언제나 건물의 꼭대기를 볼 수 있고, 섬 안에서 내가 원하는 어디든 1시간이면 충분한 기분 좋은 통제감. 목요일을 사랑하는 그 아이에게 집을 그리라고 하면 그렸을 그 모양의 집이 아직도 드문드문 보이는 제주의 작고 낮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 드림타워... 누구 드림이야 다 죽여 진짜


작은 것들은 아주 모르게 스며든다. 그러다 막상 그것들이 사라졌을 때의 공포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제주에 이십여 년을 살면서 버스 차창으로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건물은 처음이었다. 주변 건물들을 기죽이는 듯한 당당한 자태가 미웠다. 해가 건물 너머로 갔을 때 만들어질 그림자를 생각하니 그 서늘함이 반갑지 않았다. 덩치 건물 앞에 콩알딱지가 되어버린 내가, 차들이 어딘가 애잔했다.




퇴근 후 가만히 베란다 밖을 바라보자면 괜스레 행복하다. 노을 지는 주황빛 하늘과 적당한 녹음(綠陰)이 우거진 풍경 속에 자연스레 어우러진 작은 집들을 보자니, 나의 부끄러운 임대주택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의 경치를 떠올려보곤 한다.


이거 유럽 아니죠.. 헤헤.. 그래도 예쁘죠?



"난 작은 게 좋아."

"왜요?"

"그러면 내가 걸리버가 된 것 같잖아."


한계가 명확한 섬 안에서의 감당할 수 있는 '작고 낮음'들은 상대적으로 내가 큰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게 도와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작은 위안을 건네는 사소로움들을 사랑한다.


저 집이랑 나랑 키가 비슷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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