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보일 Sep 01. 2020

브런치와 조금 낡은 연애 중입니다

그럭저럭한 내 글도 필요했으면 좋겠어

요즘 브런치와 오래된 연애를 하는 기분이다. 브런치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기웃거리던 썸을 지나, 브런치의 작가가 되었다는 그 말이 가슴 뛰던 시작. 어쩌다 다음 메인에 글이 실렸을 땐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던 우월감. 절정을 맛본 후에 모든 것이 심심해져서일까. 매일 글을 쓰다 이틀에 한 번, 일주일에 한번 그리고 한 달에 한번 글을 쓰게 되었다. 매 시간마다 폰을 붙잡던 열정이 식고, 브런치 시작 122일 만에 권태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연애할 때 내가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를 바랐다. 내가 그 사람이 필요한 만큼 그 사람도 나를 원했으면. 나만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잠깐이라도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낌새(그것마저도 나의 불안함이지만)가 있을 때면 나는 절망하며 상대를 내 곁에서 밀어내고 싶었다.


혼자만의 권태기를 겪던 그날도 그랬다. 내 말에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그에게 나는 눈물지으며 구구절절 말했다. 내가 나쁜 사람이니 언제든 날 버려도 좋다고 말이다. 그의 반응은 예상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나를 안아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오래된 나의 남자 친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속으로 그래, 이럴 때가 왔지. 너도 이런 나한테 질릴 때가 된 거야. 어떤 말도 들리지 않던 자기 비하와 절망의 늪에서 그는 말 한마디로 날 끌어냈다.

 

"헤어지고 싶어서 핑계 대는 사람 같아. 나는 그럴 마음이 없는데, 넌 그런 것 같아."


헐...


뺨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헤어지고 싶은 건 그가 아니었다. 이런 나를 싫어할까 겁먹고 온몸으로 밀어낸 건 나였다. 내가 너에게 더 이상 가치롭지 않을까 봐 늘 무섭다고, 내가 사실은 정말 별로인 사람일까 봐 두렵다고. 그냥 솔직히 말하면 되는데.




생각해보면 난 재미로 글을 쓴 적은 없다. 늘 감정의 배설쯤으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 줄 알았다. 브런치의 작가가 되고 나서도 더 이상 조회수나 라이킷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누군가 글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뭐 다들 알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글을 다시 쓴다며 방방거리던 내가 브런치 얘기에 시무룩해지는 걸 내 사랑스러운 주변인들은 눈치챘으리라.


다들 한 마디씩 건넸다. 요즘은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한다는 말, 소설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는 말, 너의 글이 참 좋다는 말. 이 말 저 말 야금야금 먹다가 나는 모두 토해버리고 말았다. 토사물을 바라보며 가만 앉으니 참 서글프더라. 나는 그럭저럭한 글을 쓰고 있구나.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내 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늘 아니라고 부정해왔던 생각이 머리 꼭대기에 빙빙 돈다.





나는 지금 또 글쓰기와 헤어지고 싶어 핑계를 대는 걸지도 모른다. 내 글을 매력적이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뭐 사실일지도) 그래도 브런치는 내 글에 표정을 일그러뜨리거나 이별을 통보하진 않을 거니까 꾹꾹 참던 솔직함을 뱉어보련다. 나는 계속 이런 글을 쓸 텐데, 내 글이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일까 봐 무서워 죽겠다. 나는 생각보다 찌질한 사람이고, 그럭저럭한 글을 쓰지만 여전히 브런치 작가는 조그만 내 자부심이다. 나는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고 여전히 네가 필요하다.


브런치와 나


작가의 이전글 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위로 매뉴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