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복의 언어
미처 온수가 다 나오지 않는 욕실에서 몸을 움츠리며 출근 준비를 할 때, 무너질 것 같은 어깨에 겨우 한 짐만 한 가방을 둘러메고 만원 버스 안의 구겨진 깡통이 될 때, 허옇게 빛나는 지면 위에 애를 쓴 글자들이 무심한 상사의 책상 위에서 알알이 부서지는 구슬이 될 때, 발 고락에 힘이 들어간다.
늦은 오후 석양은 붉게 물감을 풀고 있다. 오늘도 종일 발을 구르며 살았다. 퇴근에 이르는 마음은 언제나 절절하지만, 회전문을 나선 몸은 마음과 달리 빨래 통에 아무렇게나 널 부러진 수건이 된다.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돌아간다는 것은 여간 수고로운 것이 아니다. 현관문 앞에 선 사람은 이 문을 나선 사람과 이미 다르다.
불현 듯 모든 행동이 민첩해진다. 마음이 급해진다는 것은 문 밖의 삶이 고되었다는 방증이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가볍고 부드러운 옷을 찾아 입는다. 누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캄캄한 집안의 구석에 자리한 침대로 몸을 숨긴다.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이 다르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잔잔한 팝송을 틀어두면, 마치 여행지에 온 기분이 든다. 무드가 조성되면 침대 맡에 간절하게 피어오른 작은 조명 아래 엎드려 책을 편다. 오늘은 소설책을 골라봤다. 비록 한 챕터도 다 읽지 못하고 잠에 들것이 훤하지만, 단 5분이라도 좋다. 긴 하루를 이 시간을 위해 살아온 것이니.
글 지은이 _ @ 다복